수필

나쁜 놈 -안해영-

오늘어제내일 2008. 1. 4. 02:35



주례사를 하는 분이, ‘나쁜 놈’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신성한 결혼식에서 무슨 주례사의 서두가 ‘나쁜 놈’으로 시작하는가?
특이한 주례사도 다 보겠네 싶었다.
내 평생 ‘나쁜 놈’을 신성한 결혼식에 끌어들이는 주례사는
처음 듣는 터라 긴장부터 되었다.

결혼식 주례사에 끌려 나온 ‘나쁜 놈’은 다름 아닌 나뿐인 놈이라는 것이었다.
나뿐인 놈이 세상에 나온 나쁜 놈이라고 이야기를 꺼내시는데,
‘나쁜 놈’에 대한 정의를 그날에야 비로소 똑바로 알아들었다.
‘나쁜 놈’은 다름 아닌 나만을 아는 놈이 나쁜 놈이라는 것이었다.

장가를 들고, 시집을 가고, 서로 다른 두 가정에서
자란 삶이 하나로 합을 이루는 신성한 결혼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쁜 놈’을 만들지 않는 것이었다.

장가간 남자는 여자에게 나뿐이 아닌, 네가 있음을 생각해야 하고,
시집간 여자는 내가 자라났고 나를 감싸 안아주던 곳에서
내가 알아가야 하는 새로운 세계에서
나만을 생각하는 나뿐이 아닌 남편이 있음을.
또 남편의 가족과 동화를 이루면서 살아가야 하는
하나의 공동체가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나만을 생각했던 생활이 네가 있음을 생각해야 하는 생활로 옮겨가면서
나쁜 놈이 되지 않아야 하는 어려운 생활의 시작이 바로 결혼이라는 것이었다.

나쁜 놈이 되지 않는 생활. 그렇게 쉽지만은 않겠지만,
바꿔서 생각해 보면 그렇게 어렵지만도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내가 보살펴야 하는 주변이 생겼으니 좀 더 두루두루 살피면서
양보하고 이해하며 살아가며 여유롭고 넉넉한 마음으로 생활에 임한다면
결혼 생활이 뭐 그리 어렵기만 하겠는가?

좋은 주례사를 들은 결혼식이었다.
정말 허름하고, 비좁고, 낡은 예식장이었지만,
주례사의 값진 충고의 한마디가 나에게 생각의 전환점을 준 시간이 되었다.

나만을 생각한 나뿐인 생활을 해온 건 아니었을까?
나쁜 놈이라는 소릴 누군가가 내 뒷전에서 하지는 않았을까?

나쁜 놈이 되지 않도록 이제부터라도 두루두루 살피면서 살아야겠다.


<아침울림 독자 안해영님은
동작구 대방동에 거주하며 개인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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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은 문화 관광부에서 운영하는 네이버 카페에 2008.1.4. 실린 글을 가져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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