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슬럼프

오늘어제내일 2008. 2. 1. 04:14

이러지도 저러지도 아니 움직이기 조차 싫은 날들이 쭈욱 연결 되고 있다.

올해는 너무 일찍 마음이 허망해 왔다.

지리멸렬한 날씨 때문으로 돌려 보지만, 이것은 년례행사와도 같은 것이다.

숨도 고르지 못하고 지나온 날들이 던져주는 회한의 선물이라 이름 붙여 주자.

 

이삼일에 한 번씩 찾아 오는 어떤 손이 하는 말에서 퍼뜩 정신을 가다듬어 본다.

몇 일 동안 아파서 못 왔다고 하면서 "몸이 아픈것은 육신을 쉬게 하라는 조물주의 명령이니까 정말 고마운 선물이지요. 육신이 아프지 않았으면 매일 일만 열심이 했을 것이고, 지난날들을 뉘우칠 시간도 갖지 못했을텐데, 아파서 누워 있으면서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니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그러면서, 니이체, 파스칼, 헤르만헤세까지 들먹이며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고귀한 학자나 작가들의 이름을 머리속에 떠올려 보기나 했던가?  머리가 쭈뼛 해지며, 어느 생소한 이야기를 듣듯이 한동안 멍해 있었다.

 

이렇게 멍한 시간을 나는 슬럼프에 빠져 버린 시간이라고 이름 붙여 준다.

나른한 봄이 오면 늘 슬럼프에 빠졌고, 심한 몸살을 앓거나, 지독한 감기에 걸려 며칠씩 허공에 붕 뜬듯이 머리 싸매고 누워 있어야 낫곤 했다.

 

요즘은 아플 시간도 없다.  아니 아프면 안된다. 그래서 마음 조리며 빙판길 걷듯 조심조심 조신하게 살려고 무척 몸을 사린다.  가능하면 하던 일 외의 일은 만들지 않고, 일상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저녁나절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강릉에서 명란젓과 오징어젓이 이번주안에 도착할 것이라고,  해마다 선배님이 보내주는 것인데, 염치없이 그냥 받아만 먹고 있다.  지난해에는 통 두개가 다 명란인줄 알고, 한 통을 동생에게 주고 집에 있는 통을 열어 보니 오징어젓이어서 맛있는 명란젓을 먹어 보지도 못했었다. 그런데, 오징어젓도 정말 맛있었다. 물기가 하나도 없이 양념이 얼마나 맛있게 되었는지. 그런 맛있는 젓깔을 또 보내 온다는 이야기를 해주려고 전화를 한 것이다.  정작 선물을 보내 주시는 선배님은 살짝 몰래 보내 주려 하셨나보다.  어떻게 갚음을 해야 할까?  뭐로 보답을 드려야 할지 막막하다.  뭐 부족한 것이 없는 분이시라서. 

 

슬럼프를 이렇게 작은 일상의 감동들로 조금씩 극복하다 보면, 헤어나겠지?   너무 길면 안되는데,

슬쩍 빠져 나와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