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어제내일 2016. 11. 9. 02:43

생쥐

안해영

  새벽 퇴근 무렵 주차장에서 애절한 울음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사방을 둘

러봐도 밤이 걷히지 않은 어둑한 공터에서 눈앞에 보이는 것은 주차된 자동

차뿐인데 찍찍 거리는 울음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렸다. 


 조금 전까지 노래방에서 듣던 노랫가락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상태여서

인지 처절한 울음소리가 조금은 낯설고 생경하게 들리는 새벽녘이었다. 밤

을 새워 일을 한 탓에 집에 가서 쉬고 싶어 얼른 차를 도로로 내어놓았다. 시

건장치를 세우려는데 숨이 끊어질듯한 울음소리는 더 크게 들렸다. 거무스

레한 무엇인가가 시건장치 아래서 꿈틀거렸다. 


  주차 금지 시건장치와 쥐덫

은 크기만 다를 뿐 모양이 비슷하다. 주차장의 시건장치는 세워 놓고 외부

차량이 주차를 못하도록 예방하는 장치이다. 반면 쥐덫은 세워진 장치에 먹

이를 놓고 쥐가 들어오면 풀리면서 잡는 장치이다. 두 장치가 생김새는 비

슷하지만 목적 달성의 과정은 반대다. 끈끈이에 덮여 자동차 아래에 놓인

시건장치에 붙어 있는 생쥐가 ‘물에 빠진 생쥐’처럼 보였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잠깐 망설이다가 주차장 구석에 있던 신문지로 쥐를 감쌌다. 시건장치

에서 쥐를 떼어내려다 손끝에서 꾸물대는 느낌에 당황스러워 바닥에 던져

버렸다. 쥐는 신문지를 뒤집어쓴 채로 쏜살같이 도망갔다.


  지난해 연말 저녁나절

생쥐 한 마리가 노래방 계단을 타고 들어오더니 금방 어디론가 사라

져 버린 적이 있었다. 룸의 문들은 밑으로 작은 쥐가 들어갈 만큼의 약간의

틈을 두고 있다. 그 틈은 음악이 밖으로 세어 나오게 해서 노래연습장에 들

어선 손님들에게 서먹함을 덜어주려는 틈이다. 먹이를 찾아들었을 생쥐가

인간을 배려한 틈을 이용하여 안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며칠동안 신경을

곤두세우고 찾아도 쥐의 흔적을 볼 수가 없었다. 먹을거리가 없어 주인 몰

래 다시 나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잊고 지냈다.


  단체 방에서 송년회 뒤풀이로 놀고 있던 육십 중반쯤의 젊잖아 보이는 남

자 손님이 계산대에서 주인을 찾았다. 손님이 앉아 있는 의자 오른쪽 귀퉁

이에서 쥐가 머리를 올렸다 내렸다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노래를 부르고

싶어 하는 것 같다면서. 배가 고팠을 쥐가 어떤 소동을 벌일까 걱정은 되면

서도 손님의 재치 있는 말에 웃음이 나왔다.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은 방으

로 쥐를 잡자고 들어갈 수도 없었다. 손님들이 간 뒤에 보니 천 부스러기가

의자 귀퉁이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의자의 천을 뜯

어먹었을까? 자라나는 이빨을 갉아 내느라 뜯었을까? 주인 허락 없이 들어

온 쥐는 끈끈이 덫에 생선을 놓아 유인해서 잡았다. 혐오의 대상인 쥐를 실

내에서 손님들과 함께 지내도록 알고서 그냥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십이 간지(十二干支)에 첫 번째로 등장하는 쥐는 약삭빠르며 꾀도 부릴 줄

아는 동물이라 되어 있다. 14세기 초 중국과 유럽에서 흑사병이 유행할 때 페

스트균을 옮겨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주범이기도 했다. 오늘날 실험실의 흰

쥐는 온갖 병균을 몸에 배양하며 사람의 생명 연장을 위한 연구용으로 이용

되고 있다. 사람의 것을 훔치던 쥐가 사람을 위한 희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여름 방학에는 추수시기가 오기 전에 쥐 소탕을 위한 방

법으로 쥐꼬리를 모아 오라는 숙제가 주어졌다. 방학이 끝날 무렵이면 쥐꼬

리 한두 개를 얻어 숙제를 마치려고 남학생들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기도 했

다. 어떤 남학생들은 칡넝쿨을 잘라 쥐꼬리처럼 만들어 제출했다가 혼이 나

기도 했다. 추수가 끝나면 학교에서는 이삭을 주워오라는 숙제를 또 주었

다. 남학생들이 꾀를 내어 쥐구멍 앞에 불을 피워 연기를 쥐구멍으로 들여

보내면 쥐들이 뛰쳐나왔다. 대가족을 거느린 쥐구멍을 잘 만나면 많은 벼이

삭을 찾아내어 쥐구멍 하나로 온 동네 숙제가 해결되기도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농촌의 식량 저장고인 광에서 항아리 뚜껑을 살짝 열어

놓고 그 안에 쥐덫을 놓아 쥐를 잡기도 했다. ‘독 안에 든 쥐’를 잡았던 것이다.

나도 독 안에 든 쥐가 된 적이 있었다. 손님이 가져온 캔 맥주가 순찰 나온 단

속반에 적발되었다. 알코올음료를 취급할 수 없는 노래연습장에 알코올성 음

료 반입을 막지 못한 잘못이었다. 단체로 온 손님들이 몰래 가져온 알코올음

료를 예방하는 것은 사법권이 없는 업주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아니다. 손님의

소지품을 검색할 권한은 없지만 룸 안의 탁자 위에 버젓이 올려놓은 알코올

음료에 대해 손님에게 미리 법규 설명을 하여 예방을 했어야 했다. ‘반입금지’

의 법을 지키지 못하여 단속반 앞에서 ‘독 안에 든 쥐’가 되었다. 손님한테 생

수 밖에 준 것이 없다고 애원하며 단속반에게 애절한 눈빛으로 예방을 못했

음을 눈감아 달라고 매달렸다.


  퇴근하던 새벽녘 주차장 시건장치에서 끈끈이

쥐덫을 뒤집어쓰고 울어대던 생쥐도 그런 눈빛을 어둠 속에서 보낸 것은 아

니었을까? “저 좀 이 시건장치에서 떼어 주세요. 제발. 저는 가공 식품은 먹지

않기 때문에 노래방 새우깡을 훔치지 않았거든요!”라며 애절한 울음으로 신

호를 보냈는지도 모른다. 하찮은 미물이 인간의 것을 탐내다 끈끈이 쥐덫에

걸려 당황스러워했을 애처로운 눈빛이나, 법을 깜빡 지키지 못해 적발된 난

처함 속에서 한 번만 눈감아 달라고 선처를 호소하며 매달렸던 애절한 눈빛

이 같은 정황에서 비롯했으리라 생각하면 지나친 것일까?



안해영

전남 신안 출생

2016. 8 《한국산문》 등단

anhaiyoung@daum.net

12월은 마음이 바쁜 달이다. 잘 마무리하고 2017년은 더 노력하는 해가 되도록 해야겠다.

2016. 12월호 한국산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