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함께 달빛, 소리를 훔치다 -류미월-
2018. 6월호 한국산문
《
저자와 함께(신간소개)
내 몸에는 매화가 살고 있다
≪달빛, 소리를 훔치다≫-류미월
· 시인, 수필가, 칼럼니스트
·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 《창작수필》신인상 등단
· 《월간문학》시조부문 신인상 등단
· 한국산문작가협회 이사
· 한국문인협회 남북교류위원, 한국수필가협회회원
· 한국신조시인협회 회원
· 산문집《달빛, 소리를 훔치다》, 동인시집 《따뜻한 출구》등 다수
· rhyu61@naver.com
프렐류드
한 권의 책이 ‘매화나무처럼’ 몸속에 들어왔다. 류미월 작가의 에스프
리 산문집 ≪달빛, 소리를 훔치다≫는 우선 제목부터 범상치 않다. 고급스
럽고 품격 있는 디자인의 책을 드는 순간부터 작가와 읽는 이 간에 오가
는 마음이 겹쳐 떨린다. 어느 시인이 ‘수정의 메아리’라고 부른 수면의 파
문처럼.
김창식 수필가는 추천 글에서 적시한다. “ 그렇고 그런 생활 글, 이러저
러한 글 모음이 아니다. 시적 서정을 전하는가 하면, 시대의 불안한 징후
를 은유하기도 하며, 일상의 균열이나 상처를 어루만진다. 작가의 관심은
참신하고 감각적인 언어로 빚은 형상의 물결을 타고 동심원의 파문처럼
전방위로 퍼져 나간다.”
시와 수필의 거리
그럴 싸 그러한지 참으로 그러하다. 전천후 헬리콥터라고나 할까? 류미
월 작가는 광폭의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시와 산문을 넘나들며 오랜 기간
글을 써왔다. 집에서도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작가는 손에서 책을 놓
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일상에서 책 읽기를 친구처럼 대했기 때문에 글
쓰는 작업에 좀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다.’고 토로한다.
함축적인 시를 쓸 때는 관념과 추상에 빠져 알맹이가 없는 글로 보이
고, 상대적으로 호흡이 긴 수필을 쓸 때는 이런저런 정황을 설명하느라
군더더기로 채워진 것 같은 느낌 때문에 고심도 많이 했다. 젊었을 때는
크고 화려한 대상과 사물들이 마음을 잡았는데, 지금은 작아서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에 애착이 가고 오래도록 관심이 간다. 나아가 작가는 소
망한다. 정갈한 한 줄의 글에서도 독자가 공감하고, 아파하고, 희망과 용
기를 얻는다면 작가로서 바랄 나위가 없으련만.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고?
<농촌 여성신문>과 <코스리>의 객원기자로 활동하며 칼럼을 연재하는
류미월 작가의 글은 간단명료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요소가 있다. 이에
더하여 인문학적 상상력과 시적 형상화 능력 또한 발군이다. 아랫글을
보자. 연전 어느 해 겨울 비리로 얼룩진 전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성
난 민심을 전하는 칼럼이다. 주위로부터 베테랑 전문 기자나 뛰어난 정치
평론가보다 더 생생하게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했다는 감탄을 자아낸 글
이다.
“나라를 송두리째 뒤집고 있는 요즘의 사태는 기형적으로 길어진 물고
기의 꼬리가 멀쩡한 몸통에 흠집을 내고 뒤흔드는 꼴이 되고 말았다. 어
이없이 상처를 입은 몸통인 순박하고 선량한 국민은 그래서 분해하며 떨
고 온몸으로 분노하는 것이다. 지난 주말 필자도 광화문 시위 현장에 있었
다. 군중은 마치 장자의 ≪소요유(逍遙遊)≫ 에 나오는 ‘곤(鯤)’을 떠올리게 하
는 거대한 물고기 같았다. 현장에는 희망을 갈망하는 촛불로 하루 저녁에
100만 명이 하나가 되는 힘이 있었다.”
―〈몸통을 흔드는 꼬리〉―
모자, 스마트폰, 소주병, 그리고 아버지, 아버지…
작가는 모자를 애용한다. 여성스러움의 면모를 볼 수 있는 멋진 모습이
다. 모자에 대한 시각도 남다르다. 환자가 쓰는 모자에서는 아픔을 가려
주는 위안의 도구를, 엘리자베스 여왕의 모자에서는 권력의 꽃을 본다.
예의나 기후 적응, 멋스러움의 용도로 모자가 다양하게 활용된다고 말하
면서도 어머니가 일할 때 뜨거운 볕을 가리던 수건에서는 신산한 삶의 은
유로 치환하는 발상이 참신하다.
자녀를 다 키우고 시간이 많아진 중년 여성들의 시간 보내기에 대한 예
리한 통찰 또한 돋보인다. 집에서 오전 내내 일한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여성들이 주류를 이루는 점심시간의 식당 문화도 예사롭게 보아 넘기
지 않는다. 작가의 말처럼 요즘 점심 식사 시간 식당에 가면 여성으로 넘
치고 있으니 팔자 좋은 여자로 치부될까 두려워하는 모습에서 작은 일 하
나도 예사로 보아 넘기지 않는다.
어디를 가든 작가는 손에 들린 스마트폰의 카메라로 순간을 간직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손쉽게 대상들을 오래 간직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대상을 카메라에 담기 전에 대상 앞에서 조용히 사색하고 음미하
며 심상에 저장한다면 더 깊은 맛과 의미가 배어나지 않을까? 카메라에
담기 전에 마음에 먼저 담아 대상을 음미하는 시간을 가져 보기를 권하기
도 한다.
다른 한편 소주를 좋아한다고 공공연하게 밝히는 멋진 성격의 작가는
소주병을 볼 때마다 아쉽고 죄스러운 생각이 들 때가 많다고 고백한다.
‘이왕이면 양주처럼 살다 가시지….’ 소주처럼 살다 간 아버지를 추억하
느라 지나간 시간을 돌이키며 바닥 모를 회한에 잠기는 효녀이기도 하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날 빈 소주병을 내다 버릴 때면 그 앞에 멈춰 선
다, 많고 많은 술병 중에 차가운 바닥에 초라하게 앉은 빈 소주병과 아버지
의 모습이 겹쳐서다. 바람 소리에 아버지의 이승에서의 고통의 크기가 얼
마였을까 가늠하게 된다. 칼바람 소리가 커지는 초겨울이면 다른 술보다
도 소주에 더 손이 가고 정이 간다.
-〈아버지의 소주〉-
207의 추억과 먼저 도착한 달빛
제목도 특이한 <207> 은 언뜻 기호학적인 느낌을 주는 수필로 ‘한국산
문의 이달의 수필 읽기’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207’의 함의는
다양하다. 신혼집 주소, 생일, 결혼기념일, 입사 연월일, 첫차 번호처럼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는 숫자 중 하나이자 신혼 보금자리였던 과천의 작
은 아파트 호수(號數)이다. 젊은 날의 애환, 소박한 이웃과 주고받는 인정
이 ‘빵 반죽이 부푸는 온기처럼’ 마음을 덥힌다.
“아파트에 살면서 일주일에 한 번 전체 물청소를 했는데 그날이면 작은
아파트에 사는 재미를 느꼈다. 5층부터 고무호스로 계단에 물을 뿌리고 청
소를 했다. 4층을 지나 3층에서 소나기처럼 물소리가 나다가 약해지면 띵
똥~! 하는 벨 소리에 얼른 바통을 이어가듯 물청소를 했다.”
―〈207〉―
산문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달빛, 소리를 훔치다>는 류미월 작가의 특
장(特長)인 시적 표현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복잡하지 않고 넘치
지도 않으며 바라만 보아도 마음 부자가 되는 농촌의 풍광과 사물들(호
박. 가지, 노각. 고추, 알밤….)에서 따사로운 생명의 눈을 맞추는 작가의
글은 길지 않으면서도 서정이 흐르는 가운데 의미가 숨어 있어 읽는 이의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다음의 예를 보자.
“친구 집 뜨락에 우리보다 한발 먼저 도착한 달빛도 우리 곁에 앉았다.
처마 끝에 달린 풍경이 가을바람에 맞춰 중저음의 소리를 냈고 풀벌레들
의 울음소리가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아궁이 장작불에선 밤이 탁~ 타닥!
익어가는 소리가 어떤 음악보다도 감미롭게 들렸다. 우리들의 이야기도
덩달아 정답게 들렸다.”
―〈달빛, 소리를 훔치다〉―
매화를 닮은 여자, 못다 한 이야기…
작가는 몇 해 전 이른 봄 하늘의 별이 된 엄마가 보고 싶어 친정 언니와
함께 섬진강 줄기를 따라 탐매 여행을 떠난다. 매화를 보면 어머니 생각
이 간절하다. 매화 꽃비를 맞으며 예전에 생각지 못했던 슬픈 매화를 본
다. 매화가 슬프게 보인 것이 아니라 어머니를 떠올리게 해 준 매화여서
슬펐을 것이다. 매화는 버릴 것이 없다. 매화는 봄의 전령사로 눈발 속에
서도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린다. 열매인 매실은 사람에게 건강식품이 되어
준다.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작가는 매화나무의 결실인 매실처럼 옹골차
게 영근 삶을 살고 싶어 하며 매화나무를 가슴에 품어 본다. 매화는 작가
의 다른 모습이자(Doeffelgaenger)이자 친정엄마에 대한 그리움의 표상
(Vorstellung)이다.
‘저 매화 것거내어 님 계신데 보내오져’-정철
‘매화 향기에서는 가신님 그린 내음새’-서정주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이육사
―〈내 몸에는 매화나무가 산다〉―
7부로 구성된 스타일리시한 산문집은 요즘 트렌드에 맞게 호흡이 짧은
글 모음으로 구성되었다. 시를 쓰고 칼럼을 써온 작가의 글답게 독자들에
게 친근하고 지루하지 않게 다가선다는 점이 무엇보다 미덕이다. 그 힘의
원천이 무엇일까? 류미월 수필가의 에스프리 산문집 소개를 아쉬운 마음
으로 마무리한다. 안내 글이 좋은들 어찌 본 책에 비교할까? ≪달빛, 소리
를 훔치다≫는 경기도 용인시 ‘문학창작지원금’을 지원받아 출판되었다.
안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