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카타르의 도하까지)
2004년2월12일밤9시50분 인천공항발의 카타르 항공기를 탑승하기 위하여 우리 일행 4명은 오후 7시에 공항 출국장 L카운터에서 다른 일행 20여명과 만났다.
1시간이나 먼저 와서 기다리던 영숙이는 군포에서 인천공항까지 40분만에 도착했다고,군포가 서울보다 좋다고 자랑을 늘어 놓았다. 출국 수속을 밟고, 안내를 받으니 여행기간중 옵션이 있는데, 그 경비를 미리 걷어야 한다는 가이드의 안내가 끝나자, 조금전까지 기분이 좋았던, 영숙이와 명요가 걱정이 생겼다. 이미 결재한 여행비만 내고 약간의 옵션비만 납부하면 될줄 알고 현금 준비를 조금밖에 안했다는 것이었다.
현금을 여유 있게 가져 갔던 나는 경비를 제외한 금액을 입금하려고 은행을 찾다가 2층으로 내려 가야 한다고 하여 입금을 미루고 있었는데, 천만 다행으로 영숙이와 명요의 부족한 경비를 대신 내주게 되어 큰언니의 명목을 가까스로 세웠다.
처음 환전해본 유로 였기에 유로가 비싸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았다.
그날 유로는 1:1,541이었다.
카타르의 도하 경유 이탈리아 여행은 7박 8일로 여행사에 납부한 경비는 899,000원이었으며, 옵션으로 납부한 금액은 350유로와 40달러였다.
40달러는 카타르의 도하 공항에서 8시간의 카타르 시내 여행 경비로 지출이 되는 것이었으며, 350유로는 이탈리아에서 베네치아 관광중 곤도라 승선비와, 카프리섬의 관광비, 그리고 나머지는 여행 가이드의 수고 비용이었다.
여행사에 납부한 여행경비가 저렴하여 이상하게 생각 됐겠지만, 이번의 여행은 AD TOUR(일종의 초청여행)였으므로 특별 대우를 받은 셈이었다.
이자리를 빌어 친구 남편에게 심심한 감사를 전하고자 한다.
인천공항에서 2월12일 21:50 출발하여, 1시간30분만에 중국의 샹하이에 도착하여 승객을 태우기 위해 푸등 공항에서 1시간을 지체했다.
푸등공항에서 탑승한 여행자들은 커다란 배낭에 터질듯이 물건을 담았고, 손에도 무거워 보이는 꾸러미들을 들고 있어서 그들의 짐만으로도 단순한 관광이 아닌 취업자들임을 쉽게 알아 볼 수 있었다. 땅이 아무리 넓어도 일자리가 부족한 것은 인구 비례와 경제 발전의 균형이 맞지 않기 때문일까?
2004년 아침 5시30분경 도하 공항에 도착하여 우리들은 시간을 6시간 뒤로 맞췄다. 입국장은 자그마 했으며, 가이드의 안내에 의하면 빨리 빨리에 길들여진 우리들의 정서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고 했다. 그들은 업무중에 사사로운 개인 일에 더 매달리기도 하여, 여행객들은 한없이 기다리기 일쑤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의외로 일을 빨리 처리해 주어 우리가 공항 밖으로 나와 관광버스에 탑승하니 아침 7시30분 이었다.
카타르: 날씨는 우리나라 늦봄 같다고나 할까 ? 하늘은 푸르렀고, 청명한 날씨였다. 천연가스가 풍부하여 가스를 수출한 외화만으로도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으며, 그 여유 자금으로 이번에 우리들이 여행을 하는 경비에 보탬을 주어 경비가 적게 들어간 것이었다.
관광을 위해 시내로 들어서자 일본산 닛산,도요다 자동차가 도로를 질주하고 다니는데, 한국산 자동차 한대가 지나가자 우리들은 환호를 하고 기뻐했다.
이것도 애국심의 발로일까?
모든 공산품과 농산물은 수입을 하여 생활하고 있으며, 강우량이 적어 비가 올때면 빗물을 받아 놓았다 사용하는 커피잔 모양의 빗물 받이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으며, 나머지 생활 용수는 바닷물을 정수하여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국왕의 개인 경마장에 들르니 잔듸는 스프링 쿨러로 급수를 해주고 있었고, 말들을 단련 시킨다는 수영장, 수많은 말들을 사육하는 우리가 있었고, 그 말들은 모두 국왕의 것은 아니고, 소유자의 이름이 적힌 명패가 붙어 있었다. 건물 주변에는 부겐베리아로 울타리를 해 놓은 곳도 눈에 띄었는데, 부겐베리아가 일시에 피면 참으로 아름다울 것 같았다.
낙타 시장에 들르자 퀴퀴한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고, 카타르의 낙타는 등에 있는 봉우리가 1개인 것이 우리가 책에서 보아 왔던 아라비아 사막의 봉우리가 2개인 낙타와는 다른 점이었다.
야채 시장에 들어서자 갖가지 야채가 풍부하였으며, 그 많은 야채와 과일이 모두 무세로 수입이되는 것들이라고 했다. 항공기에서 풍족한(?) 식사를 했건만 자연식을 먹지 못해서 일까? 일행은 배가 고프다고 하면서 팀별로 3~4달러씩 지불하고 씨없는 청포도와 석류등으로 요기를 하고, 재래 시장에 들르니 우리나라 60년대의 동대문 시장 같다고나 할까? 원단(옷감)과 매(조류),약간의 곡물등이 있는데, 그 규모나 진열된 상품들은 우리나라의 고급스런 상품에 길들여진 우리들의 허영심를 채우기에는 너무나 열악해 보였다.
카타르시는 산이 없고, 조금 삭막한 느낌의 넓디 넓은 허허 벌판에 조성되고 있었고, 기후탓인지 초목이 없어서 인지는 모르겠으나 드�은 땅이 주는 느낌 보다는 알 수 없는 답답함이 느껴졌다.
걸프만 해안가로 나가니 조금전에 느꼈었던 답답함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잔잔한 걸프만의 코발트빛 바다가 눈앞에 펼쳐 졌고, 맞은편 해안가에 현대식의 고급스런 고층 건물에는 관공서, 호텔, 쇼핑센터들이 녹지와 어우러져 조금전의 시내와는 대조적인 모습을 이루었고, 바닷가의 잔듸 공원에는 가족들과 같이 산책나온 현지인들과 외국인들이 눈에 띄었다. 여기가 걸프전이 있었던 걸프만이었을까?
바닷물은 잔잔하였고, 고요하여, 마치 호수 같은 느낌을 주어, 전쟁이 있었던 바다 였다는 느낌을 아무데서도 찾아 볼수 없었고, 자연의 아름다움은 인간의 욕심을 부끄럽게 느끼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