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찐 고구마

오늘어제내일 2008. 1. 14. 00:16

 

  영업장 앞에 트럭에 채소를 싣고 오는 아저씨한테서 푸성귀나 양념 거리를 사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몇 일 전에도 대파, 양파, 마늘등 향신이 있는 것들을 고르고 있는데, 야채 아저씨가 고구마 사기를 권하여 한 봉지 들고와서 압력 솥에 넣고 쪄 냈더니 이렇게 먹음직 스럽게 익었다.

 

  고구마 껍질이 붉은 빛을 띠기에 아저씨 한테 요즘 유행하는 호박 고구마를 달라고 했더니, 밤고구마인데도 아주 달고 맛있다고 하는 적극적인 권유에 못이겨 사온 것이다.

 

  금방 솥에서 꺼낸 고구마는 말랑말랑 하였으며, 단 물이 흐르지는 않았지만, 맛있을 것 같았다.

삶기는 열심히 삶았지만, 바쁜일이 있어 맛있게 먹을 시간을 놓치고, 저녁에야 한 입 먹었더니,

낮에 뚜껑을 열었을 때 같은 느낌은 싹 가시고 별 맛이 없었다.  아저씨는 밤고구마라고 했는데, 갈라보니 밤고구마도 아니었고, 말랑말랑 했을 때 먹었으면 그런대로 먹을 만 했을 고구마였다.

 

 

   가을이면 절강기에서 잘려 나온 일정한 두께의 얇은 고구마쪽을 말리느라 마당 가득 멍석에는 고구마쪽 천지였다. 세 마지기 밭에서 수확한 고구마가 얼마나 많았던지 절강기로 연일 잘라낸 고구마쪽은 마당도 비좁아서 집 건너에 있던 텃 밭에까지 고구마쪽이 널려 있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는데, 그럴적엔 고구마가 주식인 점심 거리로 나오기도 했었다.

 

  그 많은 고구마쪽을 수매꾼들이 와서 얼마나 잘 말렸느냐에 따라 등급을 매겨 가져 가는 것이었다. 고구마쪽이 널려 있는데 갑자기 비라도 오면 온 식구들은 고구마쪽 거두어 들이는데 동분서주 했었고, 비가 몇 일씩 질퍽 거리기라도하면 고구마쪽에는 곰팡이가 피었고, 상품의 가치를 잃어 등급을 제대로 받지도 못하고, 농촌의 가욋돈이 별 볼 일 없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고구마쪽이 일등급을 맞을려면 박속 같은 새하얀 색으로 뽀송뽀송하게 말라야 했고, 그렇게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 하루에도 몇 차례씩 고구마쪽 널어 놓은 멍석을 뒤집고 다녀야 했었다.

 

 

 그렇게 절강기로 썰어 말려  수매에 내고 남은 고구마는 두대통이라는 볏집으로 엮은 통안에 담아 놓았다가 겨울철 농촌의 간식으로 먹거나, 그래도 남으면 고구마술을 담가 먹기도 했었다.

 

  고구마술은 탁했고 들큰했는데, 그 맛이 산뜻하지는 않았다. 한 사발씩 들이켜도 별로 취하지도 않았던 것 같았다.  쌀로 만든 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질이 떨어 졌으며, 주로 여자들이 마셨다.

 

  요즘 호박고구마라고 인기 절정에 있는 말랑말랑하고 꿀물이 흐르는 그런 고구마보다 더 맛있었던

고구마도 있었는데, 고구마의 겉 껍질 색이 노르스름하였고, 가마솥에 쪄내면, 단물이 뚝뚝 떨어져서

우리들은 그 고구마를 꿀고구마라거나 물고구마라고 이름 붙였었다.

 

  한 겨울 눈이 펑펑 쏟아지는 밤에 소쿠리에 담아 장독대에 내 놓았다가 밤에 호롱불 밑에서 식구들이 둘러 앉아 먹던 꽁꽁 얼었던 물고구마의 맛은 요즘 먹는 아이스크림보다도 더 맛이 있었던 것 같다.

 

 

 가끔씩 어릴적 생각이 나서 찐고구마쪽을 만들어 말려 놓고 과자처럼 먹어 보기도 하지만, 어릴적 먹었던 그런 맛을 느낄 수가 없다. 단맛이 잔뜩 들어간 과자류에 빼았긴 입 맛 때문일까?

  

  겨울철 농촌의 반 식량이었거나 훌륭한 간식 거리였던 고구마가 요즘은 별미로 변했다.  솥에 삶아서 먹기도 하지만, 가끔씩 군고구마 생각이 날 때면 돌 솥에 구으면 구수한 군구마를 집에서도 만들어 먹을수 있어서 일부러 군고구마 사러 밖으로 동동 거리고 나가지 않아도 된다.

 

  어렸을적 절강기에 잘라서 말렸던 고구마쪽은 알고보니 주정 공장에서 수매해 갔었다고 한다. 

고구마쪽이 술의 원료였던 것이다.

 

  눈이 펑펑 오는 날  다시 한 번 이번에는 군고구마를 만들어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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