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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소리 안해영 가로수 그늘 따라 걷고 있다가 귀청을 찢을 듯한 매미 울음소리에 놀라 넘어질 뻔했다. 정신 줄을 놓고 걸었나 보다. 매미의 울음소리는 잦아들지 않았다. 도시의 매미들은 왜 이처럼 악을 쓰며 울어대는 것일까? 무심한 가로수 잎들은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머리 위에서 하늘거리며 그늘을 내리고 있었다. 소리는 저마다의 존재를 드러낸다. 매미 울음소리에 놀라니 일상에서 조금은 생소했던 소리가 들린다. 어릴 적 늦잠이라도 잘라치면 어김없이 들리는 아버지의 호통은 아침잠 속으로 젖어 드는 졸음을 쫓기 일쑤였다. “해가 중천에 떴다. 어서들 나오너라.” 눈을 비비며 툇마루에 쪼그리고 앉아 해를 쳐다보아도 중천은 커녕 어스름한 동이 터오고 있을 뿐이었다. 아버지는 목소리가 커서 별명이 ‘왜가리’였다. 왜가리..

카테고리 없음 2022.12.09

발표된 글

소라의 노래 안해영 “쏴, 쏴” 바닷물이 바람과 맞장구치며 파도를 만들었다. 햇볕은 강렬 하고 몽돌은 뜨거웠다. 햇살이 바닷물에 반사각을 만들어 반짝반짝 보 석을 흩뿌린 듯 눈이 부셨다. 그 빛이 보석이었다면 잠자리채로 쓱 거둬 들였을 것이다. 보석이 아니길 다행이다. 보고 느끼며 생각하는 호사 를 누릴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공평한 선물인가. 지난여름 바다에서 따온 소라 껍데기는 도시의 거실에 파도 소리를 데 려왔다. 바다가 보내온 가락은 어린 시절 시작 노트에 적었던 소라의 노 래였다. 파도를 퍼 올리던 바람은 알 수 없는 노래로 언덕을 휘감았고, 파도에 부딪힌 소라는 아픔을 노래했다. 산 아래 자리한 외딴집은 모락모락 연기 뿜어내는 굴뚝은 없지만, 고향의 양태 아재네 집과 닮았다. 그 집에서는 저녁나..

카테고리 없음 2022.11.24

오동나무 장

오동나무 장 안해영 anhaiyoung@hanmail.net 시장 가는 길모퉁이에 고가구를 취급하는 작은 가구점을 기웃거리는 것이 습관이 되어갔 다. 모조품 일색인 진열창 이었 지만 눈요깃거리가 제법 있었다. 갈색의 5단 서랍장은 안쪽에 있었 는데도 자꾸 눈길이 갔다. 가격이 좀 나갈 것 같아 선뜻 살수 도 없는데 왜 눈길이 그쪽으로만 가는지 알 수 없었다. 고향 집 안방 윗목에는 반질반질 윤이 나던 오동나무 장이 있었다. 장남을 결혼시키던 할아버지가 며느리를 맞이하는 기쁨으로 선물 한 파격적인 혼수품이었다고 한다 . 이음새와 자물쇠 부분에 있는 백동 장식으로 더 고급스럽게 보 였다. 오동나무 장을 생각하다 언 뜻 고가구점 안에 있던 갈색의 서랍장과 많이 닮았다는데 생각이 멈췄다. 직장 근처로 이사를 하..

카테고리 없음 2022.11.23

발표된 글

구시나무 찬장 안해영 어머니는 부엌에서 살다시피 했다. 아궁이 세 곳에 불을 지피 면서 한쪽에서는 막걸리를 거르며 아버지의 술상과 식구들 밥상을 동시에 차려 내던 빠른 손이었다. 음식을 잘 만들던 손맛 덕분에 어머니는 더 바빴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바쁘게 움직여도 아버지의 까다로운 입맛과 불같은 성질 앞 에서는 대책이 없었다. 밥상이나 술상이 즉시 차려지지 않으면 불 호령이 떨어지곤 했다. 어느 여름 점심 때가 거의 되었을 무렵 외출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부엌을 기웃기웃 들여다 보며 엄마를 찾았다. 아버지의 눈치를 보던 나는 얼른 밭으로 뛰어가 엄마를 불렀다. 엄마를 보자마자 아버지는 화를 냈다. ‘때가 되면 식사를 챙겨야지 들에만 있으면 어떡하느냐.’는 것이다. 아버지 는 점심 식사 때면 막걸리 반주를 ..

수필 2022.11.23

뭐든 팔아요

뭐든 팔아요 좀처럼 외식이 없는 우리 집에 외식할 기회가 생겼다. 아이들은 양식을, 남편은 한 식을 먹자고 한다. 나는 아무거나 다 좋은데 모처럼 기분 내자는 것이니 기왕이면 분위기도 있는 곳이 좋겠다고 했다. 아이들이 앞장서 식당에 도착하자 아이들은 샐 러드를 차곡차곡 성을 쌓듯 기기묘묘하게 접시에 담아 오는데, 남편과 나는 몇 가 지씩 예쁘게 접시에 담아 왔다. 아이들이 웃으며 이런 곳에서는 그렇게 담는 것이 아니란다. 주 요리인 스테이크가 나오자 남편이 오늘 외식을 하게 된 경위를 아이들에게 말 하려 했다. 옆에서 내가 남편 허벅지를 살짝 꼬집었다. “음식이나 맛있게 먹읍시 다.” 엄마의 오지랖에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들 기분 상하게 할까 봐 걱정되 었기 때문이었다. 눈치를 챈 남편이 꺼낸 말을..

조금만 참았더라면

어디든 들어가 몸을 녹이고 싶을 정도로 추운 겨울 밤이었다. 밖이 추워 가게에 들어온 손님들은 따 뜻하게 느낄 줄 알았는데 그 반대 였다. 손님들이 데리고 온 한기를 가게에 부려 놓고 몸을 으스스 털 며 오히려 실내가 바깥보다 더 추 운 시늉을 했다. 간혹 “가게에 들 어오니 포근해요."라고 말하는 손 님도 있기는 했지만. 사십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두 사람과 삼십 초반으로 보이는 여 자, 육십 초반으로 보이는 체격이 큰 남자 모두 네 사람이 들어왔다. 먼저 들어온 남자 중 한 남자가 “예쁜 도우미 두 명.”하고 외쳤다. 내가 손님을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으니 육십 초반으로 보이는 남 자가 "됐다 고마, 무신 도우미고. 괘안십니더." 하면서 네 사람이 들 어갈 방과 음료를 주문하며 현금 으로 계산을 했..

카테고리 없음 2022.11.20

지면에 올려진 글

1. 배반의 아이리스 2017. 2. 22. 안해영 anhaiyoung@hanmail.net “참 예쁘다.” 글의 뜻을 헤아리기 전에 선배로부터 카톡이 왔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환갑이 넘었는데 카톡에 오른 소개 사진을 보고 참 예쁘다고 하다니! “아이리스가 참 아름답네요. 어디예요?” 딱히 할 말이 없어 카톡 창에 뜬 청보라 아이리스 꽃밭 타령을 했더니, 선운사 가는 길목이라고 답이 왔다. 선운사는 동백꽃과 상사화만 유명한 줄 알았는데 아이리스 꽃밭도 아름다웠다. 목조 다리 밑에 무리 지어 핀 청보라 아이리스 꽃밭 소개 사진이 그리움으로 밀려왔다. 오래전 안국역 ‘아이리스’커피숍에서 선배와 만났던 생각이 났다. 그때는 선배와 봄꽃 같이 지내던 시절이었다. 아이리스는 ‘좋은 소식’이라는 꽃말도 좋..

카테고리 없음 2022.11.13

달빛 소리를 훔치다-류미월-

저자와 함께(신간소개) 내 몸에는 매화가 살고 있다 -류미월 프렐류드 한 권의 책이 ‘매화나무처럼’ 몸속에 들어왔다. 류미월 작가의 에스프리 산문집 는 우선 제목부터 범상치 않다. 고급스럽고 품격 있는 디자인의 책을 드는 순간부터 작가와 읽는 이 간에 오가는 마음이 겹쳐 떨린다. 어느 시인이 ‘수정의 메아리’라고 부른 수면의 파문처럼. 김창식 수필가는 추천 글에서 적시한다. ‘그렇고 그런 생활 글, 이러저러한 글 모음이 아니다. 시적 서정을 전하는가 하면, 시대의 불안한 징후를 은유하기도 하며, 일상의 균열이나 상처를 어루만진다. 작가의 관심은 참신하고 감각적인 언어로 빚은 형상의 물결을 타고 동심원의 파문처럼 전방위로 퍼져 나간다.’ 시와 수필의 거리 그럴 싸 그러한지 참으로 그러하다. 전천후 헬리콥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