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장
안해영
anhaiyoung@hanmail.net
시장 가는 길모퉁이에 고가구를 취급하는 작은 가구점을 기웃거리는 것이 습관이 되어갔 다. 모조품 일색인 진열창 이었 지만 눈요깃거리가 제법 있었다. 갈색의 5단 서랍장은 안쪽에 있었 는데도 자꾸 눈길이 갔다.
가격이 좀 나갈 것 같아 선뜻 살수 도 없는데 왜 눈길이 그쪽으로만 가는지 알 수 없었다.
고향 집 안방 윗목에는 반질반질 윤이 나던 오동나무 장이 있었다.
장남을 결혼시키던 할아버지가 며느리를 맞이하는 기쁨으로 선물 한 파격적인 혼수품이었다고 한다 . 이음새와 자물쇠 부분에 있는 백동 장식으로 더 고급스럽게 보 였다. 오동나무 장을 생각하다 언 뜻 고가구점 안에 있던 갈색의 서랍장과 많이 닮았다는데 생각이 멈췄다.
직장 근처로 이사를 하게 되었을 때 큰맘 먹고 소품 몇 가지를 고르
고, 고향 집 안방 윗목의 오동나무 장을 연상시켜 눈도장을 찍어 두 었던 서랍장을 들여놓았다. 나와 인연을 맺을 운명이었는지 팔리지 않고 있었다. 원목인 서랍장은 튼 튼했고 여러모로 쓸모가 좋았다. 여기저기 걸려 있던 옷가지가 서 랍에 들어가니 집안도 정리가 되 었다. 놀러 왔던 친구들은 노인네 처럼 웬 고가구 일색이냐며 핀잔 을 주었지만 내 귀에는 부러움 으로 들렸다.
집수리를 위해 짐차에 보관소로 갈 짐을 실을 때 남편은 가져갈 것과 버릴 가구들을 일일이 분리 했다. 볼썽 사납다며 서랍장과 몇 가지 짐을 아파트 마당 구석에 분 리해 놓았다. 내가 결혼하기 전부 터 간직했던 서랍장은 이리저리 옮겨 다녀 긁힌 자국이 많았다. 나 와 함께한 세월이나 사들이게 된 동기를 생각하면 버려져야 할 것 으로 취급받을 가구는 아니었다. 서랍장과 함께 마당 구석에 남겨 진 놋쇠 화로, 돈궤, 약탕기들은
진품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고풍 스러운 멋이 풍겼고, 고향의 추억 을 간직한 것들인데 그만 갈 곳을 잃었다. 버려질 처지에 놓인 가구 를 보고 있으니 어릴 적 외딴 곳에 나만 홀로 남겨져 외롭고 무서워 쩔쩔매다 훌쩍거리며 우는 꿈을 자주 꿨던 생각이 났다. 서랍장의 모습이 어렸을 적 꿈속의 내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매, 우리 아기 꿈꾸는가 보다.”라며 등을 토닥여 주던 어머니처럼 나도 서랍장을 토닥여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남겨진 짐들을 어딘가로 옮겨 놓아야 했다. 이삿짐을 나르던 회사에 남겨진 짐들도 옮겨 달라고 주소를 문자로 보냈다.
집수리가 끝나고 보관소에 있던 짐들이 제자리를 찾아들었지만 5단 서랍장은 거실 가운데 동그 마니 남았다. 여기저기 긁힌 자국과 찢어진 격자 창호 문이 있는 갈색 서랍장은 새로 들인 가구 틈에서 조화를 이루지 못 했다. 어디다 놓아야 할지 놓을 장소가 마땅히 떠오르지도 않았 다.
서랍장 위 격자 문 뒤에 구멍을 내고 5촉짜리 노란 전구를 끼운 것은 고향에서의 호롱불 빛을 보고 싶어서였다. 서랍장의 격자 창호 문에서 새어 나오는 노란 불빛을 보고 있으면 고향 집 온돌방의 따스했던 모습이 떠오 르곤 했다. 저녁 어둠을 밝혀준 호롱불은 문풍지 사이로 새어든
바람결에 흔들리기도 했지만, 서 랍장 위 불빛은 고향 집의 따스하고 고요했던 방 풍경을 떠 올려주며 은은한 빛을 비춰주었 다.
어머니는 시아버지의 사랑을 간 직하듯 오동나무 장을 구석구석 정성스럽게 닦아 광을 냈다. 광을 내면 백동 장식도 반질반질 거울 처럼 맑아지고 윤이났다. 나도 옷 소매로 한 번씩 쓱 문질러 보곤 했다. 풀을 빳빳하게 먹여 다듬이 로 주름을 편 어른들의 외출복과 언니 혼수로 쓸 옷감이 농지기로 오동나무 장 위 칸에 있었다. 우리가 입던 외출복은 아래 칸에
넣었는데, 구김이 갈까 봐 서로 위 에 올리 놓으려고 자매들 간에 작 은 다툼이 일기도 했다. 엄마는 구김이 잘 가는 옷을 위로 올려 주며 우리의 다툼을 해결해 주었 다.
오동나무 장에 있던 농지기는 언 니 시집갈 때 따라 나갔다. 아버지
가 외출할 때면 입던 다듬이질로 주름을 편 한복이나 바지 주름이 반듯이 잡혔던 양복도 농 안에서 꺼냈다. 농사에서 얻은 수익금인 돈뭉치가 농 안 깊숙이 보관되어 있다가 비료 값이며, 우리 학비로 꺼내지곤 했으니 오동나무 장은 금고 역할까지 한 셈이다.
부모님과 팔 남매의 옷을 보관했 으니 겉보기와 달리 오동나무 장 은 속이 꽤 깊었다. 잠자리에 들 때면 깊은 한숨을 토하며 잠을 청하던 어머니.
장의 깊이 만큼 깊은 숨을 토해 내던 어머니의 한숨까지 생각나
게 한 장이다. 그런 오동나무 장의 세월이 내 마음 한쪽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을까? 오동나무 장을 연 상시키던 낡은 서랍장을 애지중지 지키고 싶어 하니 말이다.
바닥이며 벽과 새로 들인 가구 들이 흰색 일색이다 보니 흠집 투성이의 짙은 갈색 서랍장이 내 눈에도 어울려 보이지는 않았다. 흠집이 생긴 서랍장처럼 사람도 살아가면서 상처나 질병이 생긴다. 안방에는 절대로 드릴 수 없다는 남편과 맞서며 서랍장이 있을 자리를 잡지 못하니 어머니 처럼 깊은 한숨이 나도 모르게 터져 나왔다.
함께 부대끼며 살던 자녀들도 병들고 늙은 부모를 가까이하기 싫어할 날이 올지 모른다. 언젠가는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될 것이고 아파트에는 뒷방이 없으니 양로원으로 밀려나겠지. 지난 세월 가족의 정과 고향 집을 느끼게 헤 준 서랍장을 폐기 처분 해야 할까?
저 흰색의 새것들 속에서 찬란히 빛낼 시간을 만들어 보자. 아프고 헐벗었던 과거도 삶의 한 자락이 아니던가? 지금 오래된 가구 걱정 할 때가 아닌지도 모른다. 나 자신 머지않아 늘고 병들면 서랍장 처지가 될는지도 모르니....
(2018 에세이 문학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