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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의 섬<시와 수상문학 2017 여름호>안해영

오늘어제내일 2017. 7. 17. 23:19

시와 수상 문학 여름호

              힐링의 섬

                                                                            안해영

증도 섬을 유명하게 한 ‘신안해저 선에서 찾아낸 것들(2016.7.26

-9.04)’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던 끝 무렵인 지난해 9월

박물관에 갔다.

‘1975년 8월 전남 신안 증도 앞바다에서 한 어부의 그물에 걸려 올라

온 도자기 6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중국의 원나라(1271-1368)

재했던 룽취안요(용천요:龍泉窯)라는 가마에서 만든 청자였습니다. 650

여 년이 지났지만 잘 보존된 원대 도자기의 존재가 알려지며 국내외로

부터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문화재청은 1976년 10월 27일부터 본격

적인 발굴을 시작하여 1984년까지 9년여 동안 11차례에 걸쳐 배와 함

께 실려 있었던 2만 4천여 점의 엄청난 문화재들을 건져 올렸습니다.’

라고 안내 글에 적혀 있었다.

해저 유물 때문에 조용하고 평화롭던 고향이 피폐해진 참상이 안타까

웠던 적이 있다. 값나가는 도자기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도굴까지 했

던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농사를 짓거나 바

다에서 고기를 잡아 생계를 꾸리던, 가난하지만 순박했던 사람들이 살

증도가 유물이 발견되면서부터 민심은 흉흉해졌지만 섬이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 “증도가 어디 있는 섬이지? 거기는 사람이

얼마나 살아?”라며 마치 어느 외계에서 온 사람 취급을 받았다. 그러다

하루아침에 “거기 보물섬 아니야? 보물이나 건지지 서울은 뭐하러

어?”라며 섬사람이면 누구나 ‘보물’을 건져 올릴 수 있지 않으냐는 농

담 아닌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증도는 북위 34도 동경 26도에 위치하

고, 해저 유물을 650여 년간 품어온 섬이다. 1,004개 신안군의 섬 중

하나로 시루를 닮아 ‘시루 섬’이라는 애칭도 갖고 있다.

거기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에 바다 사람 박 씨 아재가 살았다.

마음 씀이 넉넉한 풍채 좋은 바다 사람이었다. 아재의 일터는 바다여서

‘뱃사람’이라 불렸다. 아재한테는 “고기 많이 잡아 왔어요?”라는 질문이

따라다녔다. 뱃사람 아재는 누구나 허물없이 친근하게 지냈다. 바다에

서 살다시피 하는 아재 몸에서는 바다 냄새가 났다.

아재가 어느 날 동그랗고 납작한 구멍 난 구리 동전 몇 닢을 가져와

무명천으로 단단히 묶어 묵직하고 듬직한 제기를 만들어 주었다. 제기

로 탄생한 구리 동전은 아이들과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우리 형

제들도 아재가 만들어준 동전 제기를 가지고 제기차기를 했다. 풀잎 제

기는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는데 동전 제기는 중심이 정확하게 잡혀 발

에 잘 맞았다.

풍랑이 일던 날이면 가끔 아재 그물에 걸리던 구리 동전이었다. 고깃

배에서 품을 팔아 살던 아재는 구리 동전을 가져오는 날은 시무룩했다.

아재가 집에 오는 날 바지게에 고기가 없으면 아버지도 “허 참, 바닥에

서 고기를 안 잡고 동전이나 주우면 뭘 먹고살려고?”라며 혀를 끌끌

찼다.

갯벌 속에 묻혀 있던 굴 딱지가 덕지덕지 붙은 그릇들이 그물에 걸려

나왔다고 아재는 가끔 말했다. 굴 딱지가 붙은 그릇이 그물에 걸리면

그물코가 찢어져 재수 없다며 바다에 던져 버렸다고 했다.

인간 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하지 않던가? 보물이 바다에도 있음

을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영국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Robert Louis Stevenson, 1850-1894)이 장편 모험 소설 '보물섬'에

서 영국의 900여 개 섬 중에 외로운 섬을 골라 보물을 품게 하여 소년

짐의 손에 쥐여 주었듯. 1,004개의 섬 중에 증도 바다에 보물을 품게

했다. 아재처럼 고기잡이 어부가 건져 올린 그릇으로 인해 증도가 보물

섬이 된 것이다.

해저 유물 발굴이 시작되어 보물이 인양되면서 침몰선 주변에서는 고

기잡이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침몰선 근처에서 고기잡이하다 공연한

의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리저리 피해 가며 하는 고기잡이가

못마땅했는지 아재는 일터를 포기했다. 눈치 보며 그물질하는 것이 풍

랑보다 무섭기는 처음이라고도 했다.

고향 지인의 자녀 결혼식에서 아재의 소식을 물으니 아재는 오래전

바다를 그리워하다 돌아가셨다고 한다. 혹여 바다가 그리워 바다 위를

배회하는 새가 되지는 않았을까?

증도 바다에서 보물이 인양된 지 40여 년이 되었다. 증도에는 게르마

늄이 풍부한 질 좋은 소금이 나는 염전이 있다. 갯벌에서는 생태 체험

을 하고, 짱뚱어 다리를 걸으며 경관을 즐긴다. 산림청이 선정한 한반

도 해송 숲이 있는 우전해수욕장의 방풍림도 멋지다. 아시아 최초의 느

리게 살기의 섬으로 지정되어 증도는 행복한 힐링의 섬이 되었다. ‘국

립중앙박물관 특별전이 신안 해저선 연구에 커다란 전기가 될 것이다.’

라고 적힌 안내 글을 읽으며, 어렵게 살던 시절 보물을 세상에 알린 이

들의 노고가 뒤늦게 결실을 보고 있음이 고마웠다. 오늘의 행복이 거저

얻어졌겠는가. 누군가의 수고가 밑거름이지.


신안 증도 출생

한국산문 등단

한국산문작가협회회원

에세이문학회원

동서문학회 회원

<시와 수상문학 2017 여름호>통권 제38호

02-2277-7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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