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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출과 몰카

오늘어제내일 2018. 1. 29. 02:59

노출과 몰카

2017.08.04

여자 골프계가 요즘 복장 문제로 시끄럽습니다.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가 지난 7월 초 강화된 복장 규정을 정회원 선수들에게 통보했기 때문입니다. 새 규정은 17일부터 곧바로 적용되고, 위반한 선수에게는 벌금 1천 달러(약 112만원)가 부과된답니다.

알려진 바로는 엉덩이가 드러날 정도로 짧은 스커트나 반바지, 가슴과 등 부분이 지나치게 깊게 파이거나 깃(칼라)과 소매, 둘 다 없는 상의는 금지된다고 합니다. 새 복장 규정의 핵심은 한마디로 과다노출의 금지입니다. 일부 언론은 앞으로 미셸 위(28, 미국), 페이지 스피래닉(23, 미국) 같은 팔등신 미녀들의 늘씬하고 시원스러운 몸매를 보기는 어렵게 됐다며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세계 여자 골프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LPGA의 복장 규정은 우리나라, 일본에도 영향을 미칠 게 뻔합니다. 일본에 진출한 김하늘(29)과 안신애(27)는 뛰어난 경기력은 물론 아름다운 외모로 지금 일본 팬들의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특히 미모의 안신애는 경기 성적과 상관없이 큰 관심의 대상입니다. 그런 선수들에겐 필요 이상의 신경을 써야 하는 불편이 따르게 될 것입니다.

자유의 나라로 상징되는 미국, 거기서도 특히 자유스러울 것 같은 스포츠계의 복장 단속은 어쩐지 기이하게 느껴집니다. 언론을 통해 공표하지 않고 선수 개인 메일로 통보한 배경도 궁금합니다. 혹시 데이트 나가는 딸의 옷매무새를 걱정하고 은근히 단속하려는 어머니의 마음이었을까요. 아니면 시대에 역행한다는 세간의 비판을 피하려는 의도였을까요.

경기복은 선수가 경기력을 가장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들어집니다. 또한 경기를 관람하는 사람들에게 멋지고 아름답게 비치도록 하는 요소도 부가됩니다. LPGA의 복장 규제는 골프라는 우아한(?) 스포츠가 지나친 신체 노출로 인해 여성의 성적 매력을 겨루는 경기로 잘못 비치는 것, 그로 인해 선수들의 경기력 발휘에 왜곡현상이 생기는 걸 경계하려는 뜻으로 보입니다. 골프가 선수들의 ‘섹스어필’이 아니라 기량을 겨루는 경기임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예상대로 적잖은 선수들이 테니스의 예를 들며 LPGA의 규제를 비판했습니다. 실제 테니스 경기복은 LPGA 규정에 비하면 파격적일 만큼 자유스럽습니다. 그러나 14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최고의 테니스대회 윔블던만은 독특한 복장 규정으로 권위와 전통을 지켜 가기도 합니다. 길이나 노출에는 비교적 너그러운 반면 색깔은 완벽한 흰색으로 엄격히 통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머리띠, 모자, 상·하의, 손목밴드, 운동화, 양말 등 밖으로 드러나는 모든 복장은 물론, 땀에 젖어 내비치는 속옷까지도 흰색이어야 한다고 강제합니다.

윔블던 최다(8회) 우승을 자랑하는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36, 스위스)는 지난 2015년 규정대로 흰색 일색의 경기복으로 출전했습니다. 그러나 오렌지색 신발 바닥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경기 도중 대회조직위원회는 신발 교체를 요구했고, 심리적으로 흔들렸던 탓인지 페더러는 2회전에서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테니스나 골프처럼 볼과 기구를 다루는 기술을 겨루기보다 오로지 인간 체력의 한계를 겨루는 육상의 경기복은 훨씬 융통성이 큰 편입니다. 신체 활동에 주는 부담을 최소화하고 경기력을 극대화하기 위함입니다. 여자 선수의 경우 꼭 필요한 부분만 가려 배꼽은 물론 알궁둥이의 거의 반이 드러날 정도입니다. 그러나 혼신의 힘을 다하는 선수들의 경기 모습에서는 선정성이 아니라 진한 감동을 받게 됩니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어디서 무슨 일, 어떤 활동을 하느냐에 따라 거기에 적합한 복장이 있게 마련입니다. 학생들에겐 공부와 등하교에 편리하면서도 학생답게 단정한 복장이 필요할 것입니다. 일반 사회인들도 하는 일과 활동에 알맞은 복장이 있을 것입니다. 한여름 무더위라고 해서 육상 선수와 같은 복장으로 거리를 활보하거나 학교, 직장에 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일반 사회에도 안전과 공중의 예의를 위해 스스로 지켜야 할 복장의 규범이 있는 것입니다.

요즈음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에 오를 때엔 저도 몰래 눈을 내리까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잘못했다간 남의 치마 속을 들여다보는 치한으로 몰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안전한 발걸음을 위해 잠시 눈을 치켜뜨면 참으로 아슬아슬한 풍경에 절로 민망해집니다. 들여다보지 않아도 더 이상 감출 것 없는 여성들의 복장 탓입니다. 치마는 허벅지 위로 속옷과 비슷한 높이로 올라가 있습니다. 반바지는 두 다리가 갈라지는 부분까지 올라가 있습니다. 과다노출이 오직 시원하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입니다. 남의 시선을 끌기 위한 의도적인 경우가 태반입니다. 그러면서도 바라보는 시선에 시비를 거는 건 좀 억울하고 부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하철에 마주 앉은 여성들의 복장은 더욱 가관입니다. 짧은 치마나 바지가 더욱 위로 당겨져 아예 맨살만 드러나 보이니 참으로 난감합니다. 예전 기녀들이 살갗이 내비치는 옷에 짙은 화장을 하고 향수를 뿌리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요즘 버스, 지하철에서 하의 실종의 젊은 여성들이 얼굴 화장에 몰두하는 광경을 보게 되면 도대체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지난달 서울지하철 4호선에서 한 지방법원 판사가 휴대전화로 남의 신체를 몰래 촬영하다 붙잡혔습니다. 그는 현역 국회의원의 아들이기도 했습니다. 그 이전에도 대학교수, 대학생 등 소위 엘리트 계층에 속한 사람들이 몰래 찍는 카메라, ‘몰카’ 혐의로 체포되고 기소된 사건이 부지기수입니다. 이 같은 범죄 위험에 대한 예방책으로 최근 국무회의에서는 약물치료 대상 범죄에 ‘몰카’도 포함시켰다고 합니다. ‘몰카’에 대한 법적 제재가 강화될 전망입니다.

물론 ‘몰카’가 찬양할 일도 권장할 일도 아닙니다. 그러나 ‘몰카’에 대한 법적 제재가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의 우발적 실수에 대한 예방책으로 만족할 만한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여성의 과다노출은 특히 성적 충동이 강한 젊은 남성들에게는 폭거요 폭력일 수도 있습니다. 먼저 ‘몰카’나 성 범죄를 유발할 수 있는 복장에 대한 선도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위험을 스스로 예방하려는 노력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여성에게 과다한 노출을 삼가도록 계도하는 일이 혹시 시대착오적, 비민주적 인권 탄압이 될까요.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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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