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 한국산문 2018. 08월호 안해영
소리
안해영
가로수 그늘 따라 걷고 있다가 귀청을 찢을 듯한 매미 울음소리에 놀
라 넘어질 뻔했다. 정신 줄을 놓고 걸었나 보다. 매미의 울음소리는 잦아들
지 않았다. 도시의 매미들은 왜 이처럼 악을 쓰며 울어대는 것일까? 무심
한 가로수 잎들은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머리 위에서 하늘거리며 그늘을
내리고 있었다.
소리는 저마다의 존재를 드러낸다. 매미 울음소리에 놀라니 일상에서
조금은 생소했던 소리가 들린다. 어릴 적 늦잠이라도 잘라치면 어김없
이 들리는 아버지의 호통은 아침잠 속으로 젖어 드는 졸음을 쫓기 일쑤였
다. “해가 중천에 떴다. 어서들 나오너라.” 눈을 비비며 툇마루에 쪼그리
고 앉아 해를 쳐다보아도 중천은커녕 어스름한 동이 터오고 있을 뿐이었
다. 아버지는 목소리가 커서 별명이 ‘왜가리’였다. 왜가리 울음소리는 해
가 넘어가는 해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곱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대한 부러움이 내 마음 한쪽에 숨어있었다.
노래를 잘 부른다거나 사근사근한 호소력 있는 목소리가 부러웠다. 투박
하고 볼멘 듯한 내 목소리는 상대방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종
종 있다. 무의식적으로 건네는 말이 불만스러운 투로 들린다는 말을 가끔
듣는다. 툴툴거리는 소리로 들릴까 봐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
는 곳에서는 말을 아낀다.
고등학교 때 전교생을 대상으로 어버이날을 기념하는 공모 글에 <카네
이션>이라는 내 시가 당선되었다. 시 낭송이 교내 방송을 타던 날 나는 정
작 낭송을 못 했다. 투박한 저음의 목소리가 시의 느낌을 표현하지 못한
다고 방송반 선생님은 교내 아나운서가 대신 낭독하도록 했다. 얼마나 서
운하던지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어린 나이에 부모 곁을 떠나 섬에서 도시로 전학 가던 날 여객선의 뱃
고동 소리는 내 맘속의 슬픔을 대신했다. ‘부웅~’ 뱃고동이 울리면 조용
하던 선창과 갑판엔 일순 긴장감이 돌았다. 흰 옥양목 치마저고리를 입고
머리에 썼던 흰 수건을 벗어 흔들던 어머니. 뱃전은 위험하니 객실로 들
어가라며 떠나보내는 허전함을 수건에 묻혀 흔들었다. 잠시라도 어머니
를 더 보려고 난간에 매달리던 간절함을 뱃고동 소리가 대신 메워주었다.
눈가에 그렁그렁 맺히는 슬픔을 대신한 뱃고동 소리였다. 긴 여운을 남기
며 파도에 휘감기던 뱃고동의 애절함을 느낄 새도 없이 배는 바다를 가르
며 떠났다.
서울로 가던 날 처음 들은 기차의 긴 기적 소리는 그윽한 소리는 아니
었으나 마음을 흔드는 슬픔을 담고 있었다. 거친 소리로 떠드는 사람한
테 ‘기차 화통 삶아 먹은 소리’ 같다고 했지만 내 귀에는 구슬프게만 들렸
다. 기차를 타던 날 기적 소리보다는 ‘칙칙폭폭 칙칙폭폭’ 선로 위를 구르
는 기차 바퀴 소리에 묻혀 마음이 질질 끌려가는 듯했다. 차창으로 스치
는 경치를 뒤로 밀어내던 기차 바퀴가 먼 세계로 데려가 버릴 것 같은 불
안함 때문이었다. 종착지인 서울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가
슴이 두근댔다.
도시 도로의 큰 소리는 어떤가? 내가 먼저라고 외치는 듯 달리는 소방
차와 급박하고 당황스러운 구급차의 구명 소리. 굉음을 내며 도로를 달리
는 오토바이 폭주족들의 도시 거리를 고문하는 소리는 깜짝깜짝 놀라게
하며 궁금증과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여름날 며칠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어대는 매미의 울음소리 또한 도시의 소음 공해로 떠오르고 있다. 매연
에 시달리는 가로수의 그늘은 매미에게 썩 좋은 환경이 아니다. 매미 울
음소리는 도시 소음 속에서 생명의 영속성을 알리는 삶의 처절한 소리다.
매미의 애벌레는 7년여의 세월을 땅속 나무뿌리에서 수액을 먹고 자란
다. 성충이 되어 밖으로 나오면 다른 나무로 가지 않고 자신이 수액을 빨
았던 나무에 머문다. 짝짓기 구애의 울음소리는 생명줄이 되어준 나무에
서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울려 퍼지고 있다. 사람도 세상에 생명
의 알림을 첫울음 소리로 알리지 않던가? 매미의 울음이 도시의 공해로 들
리지만, 나무는 새 생명을 이어갈 울음에 짐짓 경건함으로 대하는지도 모
른다.
고향 집 마당에 있던 ‘멀구슬나무’도 한여름 매미들의 합주회가 열리는
곳이었다. 수컷들의 테너와 바리톤 합창쯤이었을까? 매미의 종류에 따라
울음소리의 높낮이가 달랐다. 그 시절 매미들은 지금처럼 자동차 소음을
이겨 내려고 악을 쓰며 울지 않았다. ‘쓰르름’ 합창을 하던 매미 울음소리
에 ‘스르르’ 책을 내려놓으며 툇마루에서 낮잠을 청하기도 했다. 조용한
농촌에서의 매미 울음소리는 낮잠을 청하는 자장가로 손색이 없었다. 도
시의 그악스러운 매미 울음소리는 복잡한 도시의 일상에서 정신 줄을 놓
지 말라는 경고를 보낸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안해영
전남 신안 출생
한국산문 등단
한국산문작가협회 회원
anhaiyoung@daum.net
지난해에는 친구가 보내준 매실즙을 맛있게 먹었는데, 올해는 매실
주를 조금 담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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