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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의 노래

오늘어제내일 2018. 12. 28. 11:44







수필미학 2018. 겨울호 신작수필

소라의 노래 (안해영)

소라의 노래

안해영

  “쏴, 쏴” 바닷물이 바람과 맞장구치며 파도를 만들었다. 햇볕은 강렬

하고 몽돌은 뜨거웠다. 햇살이 바닷물에 반사각을 만들어 반짝반짝

석을 흩뿌린 듯 눈이 부셨다. 그 빛이 보석이었다면 잠자리채로 쓱 거둬

들였을 것이다. 보석이 아니길 다행이다. 보고 느끼며 생각하는 호사

누릴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공평한 선물인가.


  지난여름 바다에서 따온 소라 껍데기는 도시의 거실에 파도 소리를 데

려왔다. 바다가 보내온 가락은 어린 시절 시작 노트에 적었던 소라의 노

래였다. 파도를 퍼 올리던 바람은 알 수 없는 노래로 언덕을 휘감았고,

파도에 부딪힌 소라는 아픔을 노래했다. 산 아래 자리한 외딴집은 모락모락

연기 뿜어내는 굴뚝은 없지만, 고향의 양태 아재네 집과 닮았다. 그

집에서는 저녁나절이 되면 소라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양태 아재의 어머

니가 배고픔을 달래며 흥얼대던 가락이었다.


  토지가 없던 양태 아재 내외는 너른 바다와 산이 생활의 터전이었다.

양태 아재의 어머니인 양태 할매는 아들 내외가 거두어온 풀잎과 갯것

으로 별식을 만들어 손자 다섯과 여덟 식구가 먹고살았다. 가마솥

시울의 뜨겁게 흐르던 눈물은 가난을 업으로 삼은 양태네 식구들의 눈

물 어린 식량이 되었다. 생솔가지 타는 매캐한 검은 연기가 가족의 설움

대신해주었다.


  동네를 휘감든 풀잎 달이던 달착지근한 냄새며 비릿한 갯냄새도 양태

할매의 가난을 벗겨 주지 못했다. 엄마가 퍼준 곡기든 양푼을 들고 양태

어머니를 찾아 “양태 할매!” 하고 버릇없게 부를라치면 생솔가지 태우던

부지깽이를 휘저으며 손부터 내밀었다. 할머니가 끓인 가마솥에 가득한

풀죽과 맞바꿀 곡기든 양푼을 빼앗듯 받아 채던 양태 할매의 행동이 이

제야 이해가 된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그랬을까? 허기진 배 채울 양

식이 그립던 양태 할매가 부른 슬픔의 가락들. 매캐하게 피어오르던 양

태네 굴뚝의 검은 연기는 배고픔을 달래던 설움이었다.


  가난이 업이었던 양태 할매라고 해서 가진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

었다. 마당 끝 축대 밑에 집보다 더 큰 능수버들 아래 옴팡진 돌우물이

있었다. 한여름 뙤약볕에 안 고랑 깊숙이 있던 우물마저 말라 온 동네가

타던 목마름으로 물 찾아 헤맬 때 양태네 돌담 아래 물은 동네의 생명수

가 되었다. 꽃뱀이 목욕하며 더위 식힌 생명수는 동네를 살렸다. 양태네

식구에게 양식을 만들어 준 돌우물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았다.

생명수를 얻어간 집집에선 갖가지 곡식을 조금씩 나눠 주었다. 부지깽

이 하나 들고 돌우물을 지키던 양태 할매는 물을 골고루 나누어 동네를

살렸다.


 한낮 바닷가 정자에 누워 지난 시절을 떠올리며 여름휴가를 상념으로

채운다. 물기 먹은 바람이 산들거리며 평상 위 더위를 쫓아준다. 바람에

실려 공중에서 수평을 이루는 붉은 잠자리도 날개를 펴고 평형으로 바

람을 즐긴다. 실눈으로 쳐다보는 하늘엔 구름이 놀고 있다. 강아지, 악

어, 시냇물…. 뭉게구름이 만들어낸 형상들이 평상에 누운 실눈을 호사

시킨다. 구름이 노는 하늘도 그들만의 세상이 있나보다. 지친 어깨에 무

게가 더해지면 한바탕 소나기로 쏟아 붓고, 가벼워진 어깨가 새털을 휘

날리며 훨훨 하늘을 난다. 실눈 뜬 마음도 새털처럼 가벼워져 잠자리처

럼 날고 싶다.


  해넘이 시간이 되니 바닷가 하늘이 내 어린 날 고향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노을로 장관을 펼친다. 서산 등성이 내리막 고구마 밭 건너편 바다

에서 지던 그 노을이다. 풀을 매는 엄마를 기다리던 저녁나절에 보았던

진풍경이다. 엄마의 숯다리미 속에서 이글대던 불덩이 같은 태양이다.

노을을 만들던 태양은 일렁이는 너울 위에 꽃길도 만들었다.


  뉘엿뉘엿 해가 지면 공중을 날던 잠자리도 석양도 어디론가 흩어진다.

나도 그만 털고 일어나 상념에 잠겼던 하루를 접는다. 인생 마지막이 노

을처럼 아름다워지려면 이승의 삶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이며 살아야

할까? 소라의 노래를 부르며 가난한 삶을 업고 살았던 양태네 식구도 뿔

뿔이 흩어지고 산 아래 집터는 무성한 풀만 가득할 뿐 흔적도 없다. 여

름 바닷가 이야기가 계절을 벗어나 겨울의 문턱에서 서성인다.


e­mail : anhaiyo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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