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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가 익는 밤 -박금아-

오늘어제내일 2021. 6. 16. 23:02

「무화과가 익는 밤」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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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작 조명

2021. 5. 28.

나의 고향 바다. 2021.02. 경상남도 삼천포

 

 

 

박금아의 무화과가 익는 밤

안성수(문학평론가, 수필오디세이 발행인 겸 주간, 수필시학자)

 

 

 

. 비평적 컨설팅을 위하여

 

 

현대 수필은 과거의 전통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도, 질적으로는 전통수필을 뛰어넘는 진화와 실험의 길을 걷고 있다. 이것은 문학적 진보의 결과이며, 우리가 400여 년 전의 몽테뉴식 수필을 맹종한다거나 19세기나 20세기식 수필 관념에 잡혀 있으면 안 되는 이유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21세기의 수필이 풍부한 문학성과 철학성을 겸비하여 본격 장르로서의 위상을 확립해야 하는 역사적 필연성에서도 나온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수필작가들의 전문성 함양에 달려 있다. 여기서 전문성이란 수필문학의 정체성과 미학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문학성과 철학성을 작품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킨다. 그래서 수필이 시대정신과 호응하면서 수필다운 장르적 정체성을 계발하고, 타 장르와 어깨를 견줄 수 있는 미학성과 철학성을 함유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타 장르가 보여주지 못하는 인간과 자연, 우주의 이야기를 심오하게 들려주는 새 시대의 문학예술로 거듭나야 한다. 그런 노력을 기울일 때, 수필은 가벼움을 벗고 독자적인 미학과 시학의 세계를 보여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수필창작 컨설팅은 수필작가들에게 이러한 전문성을 요청하기 위한 새로운 수필시학적 노력이다. , 수필작법과 수필미학을 유기적으로 접목한 수필시학의 틀 안에서 체계적인 텍스트 분석과 비평을 수행하고, 이 과정에서 발견된 미학적 문제를 창작방법과 연계하여 대안을 찾아 제시하려는데 목적을 둔다. 이를 위해, 수필창작의 세 가지 필수과정인 소재의 철학적 통찰과 숙성, 이야기의 미적 구조화, 창의적인 서술과 수사전략을 창작과 비평의 기본 축으로 삼게 될 것이다.

소재의 철학적 통찰과 숙성이란 소재에 내재한 철학적 가치와 의미를 읽어내는 방법이다. 이야기의 미적 구조화란 통찰을 통해 추출한 소재 이야기를 예술성과 문학성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배열하는 방법을 가리킨다. 마지막으로 창의적인 서술과 수사전략은 이야기를 수필답게, 감동적으로 들려주기 위한 서술전략이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이 세 가지 요소를 텍스트 평가의 준거로 삼아 작품의 철학성과 문학성, 기법, 완성도 등을 객관적으로 분석 평가하고, 준과학적 수준의 창작방법을 대안으로 제시하게 될 것이다.

 

 

 

. 분석방법과 컨설팅의 논리

 

 

1. 텍스트 읽기와 의미망 찾기

 

 

컨설팅을 위한 비평 텍스트는 박금아가 2017년 《수필세계》가을호에 발표한 무화과가 익는 밤이다. 이 텍스트는 작가가 보내온 10편 중에서 작가적 재능을 가장 개성 있게 보여준 작품이면서 풍부한 예술성을 함유한 문제작이라는 측면에서 선정하였다.

이 작품의 미덕은 텍스트의 여러 곳에 예술적으로 절묘하게 숨겨져 있다. 예컨대, 도입부에서 모성애 갈망심리를 만물조응의 이치로 터득하여 이야기의 동기로 활용한다. 무화과의 독특한 존재형식에서 어머니의 숨은 사랑법을 찾아낸 것도 기발하고 창의적이다. ‘내 속의 아이가 무시로 울음을 터트리게 하는 모성애 결핍 콤플렉스를 창조적인 글쓰기로 승화시킨, 이른바 울음의 극복과정을 일생의 통과의례(Rites of passage) 구조로 파악한 점 또한 탁월하다. 그리고 오십여 년이 넘는 서사적 프레임 속에 울음의 감정을 몽타주 형식으로 모아 풍부한 서정성을 함유한 수필로 형상화한 점도 개성이 넘친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수필가 박금아의 작가적 재능을 평가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문학적 완성도 측면에서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어떤 작품이 시공을 초월하여 명작으로 읽히기 위해서는 견고한 울림의 메커니즘을 구축해야 한다. 그 중심에 문학성과 철학성의 신비로운 상호작용이 숨어있다. 이제, 그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텍스트의 분석과 비평의 길로 나가야 한다. 다음 텍스트는 비평적 컨설팅의 텍스트로 선정된 박금아의 수필이다. 단락 앞의 원문자는 기술상 편의를 위한 것이다.

 

 

 

무화과가 익는 밤

 

 

가을에 들면 달빛은 마방馬房에 들어와 앉았다. 어린 말이 벌레를 쫓느라 꼬리로 간간이 제 몸을 치는 소리가 적막하기만 하다. 잔등을 쓰다듬노라면 말은 제 어미를 부르듯 큰 눈망울을 들어 저편 하늘로 히힝!” 소리를 날려 보냈다. 그곳 말 울음소리가 닿는 곳에서는 무화과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나무 아래에 서면 푸르레한 공기 속으로 철새가 날개를 퍼덕이며 밤하늘을 날았다. 새가 날아간 자리에는 오래도록 울음이 남았다. 그 소리가 밤의 젖줄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유선乳腺이 탱탱해진 밤은 젖꼭지를 열었다. 무화과의 발그레한 젖꼭지에서 젖물이 비쳤다.

 

태어나서부터 젖이 고팠다. 어머니는 집안 일에, 어장 일에, 젖먹이에게 젖 먹일 시간조차 없었던 것 같다. 고픈 젖을 쌀죽과 원기소로 채우며 자랐다고 했다. 아기 입에는 증조할머니의 쪼글쪼글한 젖이 물려 있었단다. 빈 젖이었으므로 헛헛증을 앓았다. 동생이 태어나면서부터는 바쁜 어머니를 떠나 외가와 친가를 오가며 살았다.

가족과 함께 사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동기간과 싸워서 부모님에게 매를 맞는 것조차 부러웠다. 친가 앞집에 살던 말 구루마 집딸 향란이는 제일 부러운 아이였다. 언니가 우리 집의 일을 도와주고 있어서 그 집엘 자주 드나들었다. 작은 방에 가족 모두가 배를 깔고 누워서 발장난을 치며 만화책을 읽는 모습이 좋아 나도 식구가 되고 싶었다. 친가에는 어린아이라곤 나뿐이어서 어른들은 더없이 귀애해주었지만 내내 엄마와 동생들이 그리웠다.

 

밤이 되어 집으로 올 때면 무화과나무 아래로 돌아왔다. 마구간의 어린 말처럼 나무를 올려다보기만 해도 입에서 엄마!” 소리가 나왔다. 그러면 나무는 가지를 열어 무화과를 내밀었다. 발그레하게 익은 무화과 끝에서 누런 젖이 뚝뚝 떨어져 내릴 것 같았다. 발꿈치를 들고 무화과를 향해 손을 뻗으면 향란이네 고양이도 허기를 느꼈던지 내 기척에 귀를 쫑긋거리며 앞발을 돋우었다. “야옹!” 울음은 존재하는 것의 다른 모습이어서 그 소리에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쥐들이 기겁을 하며 달아났다. 소스라쳐 놀라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젖국물이 흥건할 무화과를 어찌해보지 못한 채 그곳을 달음박질쳐 나왔다.

 

할머니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적막이었다. 탱자 빛을 내며 마루 기둥에 달려 있던 알전구, 마당 깊이 내리던 달빛, 꼬막 조개처럼 꼭꼭 다문 문의 입들……. 그 맨 끝 문을 열고 들어간 방에 혼자 누워 이불깃을 당기면 멀리서 울음들이 들려왔다. 말 울음소리와 철새들과 아직도 놀란 가슴을 추스르지 못한 쥐들의 울음이. 그런 밤이면 잘 익어 쩍쩍 갈라진 무화과의 과육을 두 손으로 흠뻑 적시며 먹는 동생들 꿈을 꾸고는 깨어 일어나 훌쩍거리곤 했다. 그 모든 울음을 담아내고도 내 유년의 방은 너무 넓어 늘 허우룩했다.

 

열 살 무렵이었다. 방학을 맞아 가족이 있는 섬으로 갔다. 밤이 깊어서야 일을 끝낸 어머니는 남폿불 아래에 나를 앉히고 참빗질을 했다. 머리에서 살찐 벌레들이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혼비백산하여 줄행랑치는 녀석들처럼 당황해져서 나는 눈길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어머니의 엄지손톱 끝에서 붉은 물이 터져 나왔다. 마루 틈새에 새겨진 혈흔은 내 기억 속으로 흘러 들어가 몸을 불렸다.

 

늘 배가 고팠다. 태생적인 허기에, 작은 벌레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다는 연민까지 겹친 탓이었다. 키만 키웠을 뿐, 웃자라 꽃도 열매도 부실했다. 향란이 집 마당의 무화과처럼 어머니의 젖꼭지는 늘 내 손이 닿지 못하는 거리에 있었다. 스스로 젖이 되어야 했다. 자라서 보니 가족들이 기억하는 많은 것들이 내게는 없었다. 가족의 아픔과 기쁨이 온전히 내 것이 되지 못했고, 나의 그것들은 가족의 그것이 되지 못했다. 공유하지 못한 감정은 외로움과 서운함으로 변이되어 울음의 시원이 되었던 걸까. 어른이 되어도 내 속의 아이는 무시로 울음을 터뜨렸다.

 

오십여 년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간 시장터에서였다. 장터는 남도의 특용작물인 무화과들로 무화과밭 같았다. 어머니가 어느 꼬부랑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더니 나를 소개했다. 향란이 어머니였다. 향란 할매는 나를 알아보고는 팔고 있던 무화과 하나를 덥석 쥐여 주었다. 탱탱하게 영근 유두에서 저고리 섶 아래에 숨겨져 있던 내 젊은 어머니의 젖멍울이 만져졌다. 무화과를 쪼개자 어디선가 철새의 울음이 들려왔다. 어린 말과 고양이 울음소리도 났다. 나의 머리를 참빗질하던 어머니의 흔들리는 눈빛이 보이고, 어린 것을 품에서 내쳐야만 했던 어미의 슬픔이 차올랐다. 어쩌면 그때, 내 속의 뜨락에 어린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심어졌는지 모를 일이다.

 

울음은 가장 깊은 곳에 다다르는 것을 본질로 한다. 감정이 고조될수록 울음소리가 커지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그것은 그리움의 다른 표현이기도 해서 사람들은 울음소리에 마음을 내어준다. 모든 울음은 익으면 젖이 되는 걸까. 무화과 속이 붉은 것은 울음들의 결정結晶이 만들어낸 색깔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슬픔을 이해하게 되다니……. 외로움조차 달콤한 속이 되었음이다. 깜깜한 밤의 시간 속에서도 나의 무화과는 달보드레하게 익어가고 있었던 게다.

 

오늘 밤에도 나는 나의 무화과나무 아래로 간다. 까만 컴퓨터 화면에 설익은 시간을 펼쳐놓고 다독이다 보면 어느새 손가락 끝에서 무화과 꽃이 피어난다. 푸른 달빛 속으로 철새들이 날아가고 아득한 곳에서 향란이네 말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무화과가 익어가는 밤이다.

 

 

 

 

이제, 텍스트의 분석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이 작품의 의미망을 정리해 보겠다. 텍스트의 주제는 모성애 결핍 콤플렉스의 생성과 극복’, 또는 모성애 결핍 콤플렉스의 생성과 극복을 통한 자기 구원의 이야기로 이해된다. 이러한 주제를 형상화하기 위해 작가는 11개의 단락을 배열하여 미적 구조를 만들고, 다음과 같은 단락을 기능별로 배치하여 의미망을 구축한다. , 만물조응의 이치→ ②모성애 결핍 원인→ ③모성애 결핍 생성→ ④모성애 결핍 심화→ ⑤모성애 결핍 심화→ ⑥모성애 결핍 결과→ ⑦모성애 결핍 극복 조짐→ ⑧극복 동기와 방법 터득→ ⑨극복방법 터득 결과→ ⑩극복과 승화→ ⑪승화 결과의 단계로 이행한다.

 

 

2. 분석방법과 컨설팅 기준

 

 

먼저, 수필창작 컨설팅에 필요한 비평 자료를 모으기 위해 텍스트의 분석방법과 평가 기준을 제시하고자 한다. 비평이 준() 과학적인 학문이 될 수 있는 것도 각각의 방법이 철학적 이념을 내재한 분석방법과 평가 기준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분석방법은 수필시학적 논리와 형식주의 및 구조주의적 방법, 그리고 그 외 한두 가지 방법을 절충할 것이다. 이러한 분석방법과 결과를 통해서 작가가 어떻게 미적 울림을 생성하고, 작동시키는가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물론 작가가 그런 울림구조와 작동방식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창작에 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완성된 텍스트 속에는 고유한 구조와 독특한 울림의 메커니즘이 구축되어 있다. 이것들의 분석을 통하여 진일보된 수필작법과 수필미학을 창작에 접목하는 방법을 대안으로 제시할 것이다.

둘째, 컨설팅 현장에서는 텍스트의 치밀한 분석과 진단평가를 위해 이미 제시한 수필창작의 세 가지 핵심요소를 중심으로 창작방법을 논의한다. 이들은 수필텍스트를 예술적으로 구축하고 문학적 의미를 생성하는 핵심전략이라는 점에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1) 소재의 철학적 통찰과 숙성은 수필창작 과정에서 선결해야 할 핵심전략이다. 소재 통찰의 깊이가 작품의 깊이를 결정하고, 소재 통찰내용이 텍스트의 철학성을 마련해주며 주제의식을 확정하는 길이라는 점에서 이 작업은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소재의 철학적 숙성작업에서 보여주는 대상 인식의 깊이는 감성(감정) 수준과 이성 수준, 그리고 영성 수준의 세 단계로 나누어 살핀다. 먼저, 감성 수준의 소재 통찰은 작가의 대상 인식의 깊이가 소재의 외적이고 물리적인 특성파악에 머문다. 이 경우, 작가의 통찰은 오감에 의한 관찰(觀察)이 주를 이루며, 작가의 소재 인식은 감성과 정서 수준의 의미 파악에 머문다. 따라서 소재 통찰의 결과는 최하위 수준인 1단계로 평가한다.

이성 수준의 소재 통찰은 소재의 외적인 물리적 특성을 가져다준 내적 작용을 인과적으로 분석(分析)하여 어떤 물리적이고 정신적인 법칙이나 이치를 인식하는 수준까지 나아간다. 이러한 인식작용은 1단계의 감성적 관찰결과에 관한 유기적이고 인과적인 분석을 통해 제공되며, 소재 통찰결과는 중간 수준인 2단계로 평가한다.

영적 수준의 소재 통찰은 대상의 본질에 관한 깨달음을 들려주는 수준까지 이른다. 이런 작품은 인간의 본질 통찰능력인 영성을 깨워 소재의 본질 세계에 관한 깨달음을 들려준다. 이를 위해, 작가의 몰입통찰 능력은 무심(無心)의 경지에서 소재와 합일의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의 소재 통찰결과는 최고 수준인 3단계로 평가한다. 소재의 본질에 관한 영적 깨달음이 가치 있는 것은 그것이 최상의 진실에 가깝기 때문이다.

 

 

2) 수필의 미적 구조화 전략은 소재 통찰을 통해 획득한 이야기 재료를 예술적으로 배열하는 데 목표를 둔다. 수필은 소설처럼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므로 어떤 정형화된 틀에 담는 것을 거부한다. 그리고 수필 이야기는 실제 세계에서 가져온 것이므로 단지 선택한 이야기를 울림이 큰 방식으로 배열하는 데 치중한다.

따라서 수필작가에게는 창의적인 이야기 배열형식을 찾아내어 구조화하는 전략이 요구된다. 이때, 산문의 구성법을 활용할 수도 있지만, 소재와 주제에 어울리는 배열법을 찾아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중에도 핵심 제재의 형식에서 가져오는 방법이 있다.

 

 

3) 창의적인 서술과 수사전략은 문장과 표현방법에 관한 논리이다. 수필의 서술전략은 비유와 상징을 비롯한 일반적인 수사전략과 함께 수필 언어의 본성과 작가의 개성을 살리는 서술방법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수필의 언어는 깨달음의 언어이자, 작가의 자기 철학과 자기 미학을 가장 진실하게 들려주는 존재탐구의 언어이며, 작가 자신을 가장 자기답게 보여주는 개성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필의 서술전략은 수필의 정체성과 미학을 극대화하는 표현과 설득방법을 찾는데 주어져야 한다. 이 점에서 타 장르의 언어를 모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보다는 소재와 주제에 따라서, 그리고 작가의 철학과 미학을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문장미학을 개발해야 한다. 수사학의 설득방법도 함께 연구해야 할 과제이다.

 

 

 

. 수필작법의 분석과 컨설팅

 

 

1. 소재의 숙성전략

 

 

1)분석과 평가

 

한국 현대수필에 대한 불만 중의 하나는 철학성의 빈곤 문제이다. 다행히 수필작품의 철학성은 소재의 통찰단계에서 획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난제는 아니다. 그것은 소재의 심오한 재인(再認)과 통찰의 깊이에서 나오는 인식의 산물이다.

수필의 철학성은 작가가 소재의 본질 세계에 대해 던지는 의미 있는 질문과 깊은 인식에서 나온다. 그것은 소재에 대한 집중적인 몰입 명상의 결과로서 소재의 본질에 관한 심오한 인식과 깨달음의 형태로 체득된다. 작가의 소재 통찰능력은 몇 가지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첫째, 소재 통찰의 깊이가 작품의 깊이를 결정한다. 둘째, 소재 통찰의 깊이가 깊을수록 진실과 진리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셋째, 텍스트의 미적 울림의 질과 양은 대체로 소재 통찰의 깊이에 비례한다는 점 등이다.

그런데 이런 소재 통찰의 깊이는 소재 인식의 도구에 따라 차이가 난다. 여기서 인식의 도구란 작가가 소재의 의미를 읽어내는 방법(관찰, 분석, 각성 등)을 일컫는 말이다. 감각과 지각을 통한 관찰 수준에서는 소재 통찰이 정서적 인식에 머물고, 논리와 분석을 통한 이성적 통찰 수준에서는 소재의 존재법칙과 원리 인식에, 그리고 영성을 통한 초월적인 통찰 수준에서는 우주적 진실과 진리 인식이 가능하다. 따라서 소재를 어느 수준까지 통찰할 수 있느냐는 전적으로 작가의 인식능력에 달려있다.

그러면 이 수필에서 발견되는 작가의 소재 통찰의 깊이는 어느 수준일까? 출생 이후 축적되기 시작한 모성애 결핍 현상은 원인(단락), 생성(), 심화(,), 결과(), 극복조짐(), 극복방법 터득(), 터득결과(), 극복(), 승화()의 단계로 나아간다. 이 중에서 작가의 소재 인식의 깊이를 보여주는 서술은 단락~에서 확인된다. , 단락스스로 젖이 되어야 했다라는 문장은 모성애 결핍 콤플렉스의 극복방법에 대한 이치 터득결과를 암시하고, 단락나의 머리를 참빗질하던 어머니의 흔들리는 눈빛이 보이고, 어린 것을 품에서 내쳐야만 했던 어미의 슬픔이 차올랐다.”라는 문장은 감정적이고 정서적인 인식결과를 보여준다. 그리고 내 속의 뜨락에 어린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심어졌는지 모를 일이다.”라는 고백은 이성적 인식결과이다. 단락모든 울음은 익으면 젖이 되는 걸까.”무화과 속이 붉은 것은 울음의 결정이 만들어낸 색깔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슬픔을 이해하게 되다니.”등은 모두 이성적 인식결과에 대한 표명이다. 그러므로 이 수필의 소재 통찰결과는 감성과 이성 수준에 머무는 것으로 인식되며, 반면에 영성 수준까지는 나아가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2)소재 통찰법 컨설팅

 

흔히, 수필작품을 놓고 철학성이 부재하다거나 빈곤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작가의 소재 통찰력이 깊지 못한 데 대한 비판이다. 이때 철학성이란 대상과 그 본질 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과 인식, 의미부여 등을 의미한다. 여기서 깊이 있는 인식이란 적어도 2단계 이상의 소재 통찰, 즉 이성과 영성 수준의 통찰을 뜻한다.

그중에서도 영성을 통한 소재 통찰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영성이란 작가가 무심(無心)의 상태에서 핵심 소재를 몰입 통찰하는 과정에서 깨어나는 초월적인 인식의 힘이다. 문제는 이러한 본질 인식의 도구를 깨우는 방법에 있다. 먼저 호흡 명상 등으로 마음을 비운 뒤에 타자의 간섭을 받지 않는 진정성의 공간에 이입해야 한다. 그리고 그 비어있는 공간에서 소재에 대한 몰입 명상을 지속하게 되는데, 이때 작가의 몸속에 숨어있던 영성이 깨어나 몰입행위를 이끈다. 몰입 명상이 무르익을 무렵 작가와 소재가 합일되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데, 바로 그 순간 깨달음의 언어와 조우할 수 있다.

깨달음의 언어는 감성과 이성으로 통찰하는 과정에서는 만날 수 없는 신비롭고 순수하며 진실한 초월적 의미를 내포한다. 그러므로 영성은 작가에게 소재 속에 숨어있는 가장 진실한 우주 본질의 언어와 해후하게 도와준다. 이때 체득한 우주의 언어를 들려줄 때, 독자는 가장 깊은 곳에서 울리는 미적 울림과 각성의 소리와 만나게 된다.

따라서 영성을 활용하여 소재의 본질 세계로 이끌어주는 몰입명상법을 체득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것은 작가가 개인 차원에서 습득해야 할 고급작법의 한 과정이다. 작가의 소재 통찰이 각성 수준까지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소재에 대한 진정한 숙성 과정을 거쳤다고 말할 수 있다. 진정한 숙성이란 소재에 관한 몰입 명상을 통해서 감성과 이성, 영성 차원에서 총체적인 의미와 깨달음을 획득했음을 뜻한다.

앞서 설명한 논리를 무화과가 익는 밤에 적용할 경우, 작가의 소재 통찰 수준은 감성과 이성 수준이다. 작가는 무시로 터지는 자신의 울음에 대하여 모든 울음은 익으면 젖이 되는 걸까. 무화과 속이 붉은 것은 울음의 결정이 만들어낸 색깔 때문일지도 모른다.”라는 감성적 고백을 한다. 또 모성애 결핍의 본질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슬픔의 본질을 체득해야 하는데, 작품에서는 어머니의 슬픔을 이해하게 되다니.”란 이성적 물리터득의 결과만을 고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의 인생을 외로움과 서운함, 그리움으로 채워 놓은 모성애의 결핍과 그것이 초래한 울음의 본질에 대하여 함구한다. 울음의 궁극적 원질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온 것인가를 성찰하여 들려주었다면, 이 작품의 미적 구조는 보다 심오한 철학적 울림을 들려주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작가가 이 수필의 가장 중요한 모티프인 모성애의 결핍과 울음의 본질에 대한 영적 수준의 통찰을 시도했더라면 이 작품의 울림 공간은 한층 더 깊고 넓어졌을 것이다. 특히, 작품의 도입부에서 만물조응 사상을 글쓰기의 동기로만 제시하고, 그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주지 않은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영적 수준의 통찰이 필요한 것은 소재의 본질 속에 숨어있는 진실과 진리의 언어를 깨달음의 형태로 인식하기 위해서이다. 그것은 감성과 이성 수준에서는 성취할 수 없는 진정한 본질의 의미를 함유한다. 영성은 모든 인간에게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는 본질 인식의 힘이자, 삼라만상과 소통할 수 있는 만물조응의 영적 도구이므로 작가가 창작과정에서 반드시 각성시켜야 할 도구이다.

 

 

2. 미적 구조화 전략

 

1)분석과 평가

 

통찰이 끝난 소재 이야기들은 예술적으로 재배열하여 구조화된다. 구조화된 이야기의 배열방식은 텍스트의 의미구조를 구축하여 문학적 의미와 미적 감동을 생성하는 기본 틀로 자리 잡는다. 이러한 이야기의 미적 구조는 독자가 미적 감동과 문학적 의미를 극대화하여 체험할 수 있도록 배열하는 데 목표를 둔다.

미적 구조화의 측면에서, 수필은 소설과 달리 정형화된 이야기 틀이 없다. 따라서 수필작가에게는 소재 이야기들을 어떤 형식과 구조에 담아 들려줄까가 늘 궁리 대상이다. 필자의 연구에 따르면, 수필 이야기의 최적의 배열법은 작가가 선택한 중심 소재의 형식이나 구조에 숨겨져 있다. 이를테면, 등나무처럼 살아가는 사람 이야기는 등나무의 형식이나 구조에 이야기를 담아 배열하고, 달팽이를 닮은 사람의 이야기는 달팽이의 생태구조나 삶의 형식에 이야기를 담아 들려주라는 말이다.

이런 기준에서 볼 때, 무화과가 익는 밤의 미적 배열은 매우 독특하고 창의적이다. 이야기의 전체 배열방식은 통과의례 구조에서 취하고, 작가에게 모성애 결핍 콤플렉스를 안겨준 어머니의 사랑법은 무화과 형식으로 형상화하였다. 이 작품에 숨겨진 배열법의 신비는 통과제의 구조와 무화과 형식을 혼용한 데 있다. 놀라운 안목이자 발견이다.

작가는 무화과의 사랑법과 어머니의 사랑법을 등가적으로 인식하여 무화과의 형식 속에 어머니의 사랑법을 담아 들려준다. 이러한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면, 이 작품의 구조적 비밀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무화과는 겉으로 꽃을 보여주지 않고 과피 속에 숨겨 과육의 성장과 성숙을 꾀한다. 작가의 어머니 또한 겉으로는 바쁜 가정사 때문에 어린 딸(작가)에게 젖을 주지 못하고 친가와 외가의 할머니들에게 맡겨 키움으로써 정서적인 모성애 결핍상황으로 이끌었다.

이러한 사실은 단락태어나서부터 젖이 고팠다. 어머니는 집안일에, 어장일에, 젖먹이에게 젖 먹일 시간조차 없었던 같다.”로부터 시작하여, 단락나의 머리를 참빗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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