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저편과 현실
2004년을 기억 하면 지워 버리고 싶은, 심한 얼룩으로 엉망 진창이 되었던,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터전 위에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았던 해라는 생각을 하곤한다.
년초부터 지구대가 덮쳤고, 그때의 기억을 낱낱이 파헤쳐 보고 싶지 않아도 너무나 선명히 기억의
편린이 아닌, 커다란 상처로 자리하고 있어서, 그런 삶이 또 올까? 또 온다면 그 때는 어떻게 대처를
하게 될까? 지금은 지난 과거로 잊어 버리고 지내는 날이지만, 그래도 기억에서 되 살아나는
때가 있을 적마다 부르르 치를 떨면서 몸서리를 쳐 보기도 하는 사건이었는데.....
2007년10월30일 23시23분에 손님을 받고, 빈 방으로 만땅인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날을 바꿔 10월 31일 1시 15분......
젊은 남.녀 3명이 들어 오는데....... 그 중 한 명의 젊은이가 눈에 익다.
뿌우연 피부에 곱살한 꽃미남 스타일. 눈꼬리는 살짝 내려졌으며, 갸름한 얼굴에 키도 크고, 얼굴 어디를 봐도 남에게 해 될 만한 일을 만들면서 살 것 같아 보이지 않은 인상인데....
참으로 오랬만에 보아서 반갑기도 하여 그냥 무심코, 던진 말.....
"개과천선 된 듯 보이네?"
"나를 아시는 눈치네요?"
"그럼...잊을 수가 있나? 거의 4년만에 보는 듯 한데?"
"그정도 되었겠죠?"
"살도 많이 빠지고, 아주 선해 보이네...."
"그렇게 보여요? 그렇지요. 나야 뭐 그런 양아치들과는 조금 다르죠."
"암튼 반갑네....."
"이제는 걱정 안하셔도 되어요. 그 형 이제는 안 올거예요."
"어디로 이사 갔어?"
"네... 좀 오랬동안 못 올거예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거의 1년 정도 못 본 듯 한데...."
80일의 긴 영업정지에서 다시 영업을 시작하자, 그 인간은 꼭 만원짜리를 들고 주기적으로 찾아 들었다.
우리집에 안 왔으면 좋겠다는 노골적인 표현을 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꼭 태진반주기의 방을 고집했고, 태진반주기방이 빈 방이 없다고 하면,
기다려서라도 노래를 부르고 가던, 그 철면피 같던 인간의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지구대 경찰 6명을 끌고 와서 노래방을 발칵 뒤집어서 온 몸에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나를 괴롭혔던
그 인간의 근황을 듣게 되다니, 그것만이 아니었다.
영업정지를 기다리고 살얼음판 같은 날들을 살고 있을적 가끔씩 젊은이들이 떼거지로 몰려와서
음료수 시켜놓고, 리모컨과 반주기에 음료수를 부어 놓거나, 마이크 줄도 끊어 놓고,
마이크의 카트리지를 망가트려 놓기도 하였고....그랬던 젊은이 중의 한 명....
그 인간의 후배로 이 동네에서 자칭 양아치 노릇을 하던 젊은이들 중의 한 명이다.
"그 형..이제 40살은 넘어야 나올거예요. 돈으로도 빼 낼 수 없어요. 워낙 전과가 많아서..."
"음~~ 무슨 죄로?"
"그런 사람들은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어요. 취직도 할 수 없고, 자영업을 할려고 해도 자본도 없고,
어려서부터 전과가 있는 사람은 사회에서 버텨 낼 수가 없어요. 누가 받아 주나요?"
"음~ 나 그 때 그 젊은이에게 벌을 줄 수 있는 증거를 충분히 갖고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어.
내가 여기서 영업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으면 그렇게 했겠지만, 나는 여기서 영업을 계속 해야 했고...
그래서 내가 고통을 다 감수 하면서도 참았어. 최근 1년전까지도 우리집에 계속 왔었어."
"잘 하셨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시길 잘 하신 거예요."
그랬다. 한 일년 전 쯤부터 그 인간이 보이질 않았다. 그런데 한 6개월 전 쯤인가?
우리집 옆지기가 사우나에서 보았다고 했었다. 그런데 노래하러 오지는 않았었다.
어디서 또 나한테 하듯 그렇게 행동하다가 된통 걸린 모양이다.
사실 나는 가끔 그 젊은이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갖기도 했었다.
그렇게 호된 곤욕을 치르지 않았었다면, 아마도 지금처럼 맘 홀가분하게 영업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행정법원에 이의 신청 할 때, 그 인간이 나 한테 신고를 없던 것으로 해 주겠다고 만들어 줬던,
탄원서도 증거로 제출 했었고...
그 인간이 구청 담당자한테 찾아가서 자기가 잘 못 신고를 해서 그러는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묻고 다녔다고 구청 직원이 나 한테 알려 주기도 했던 내용까지
서류에 다 적었지만, 나는 큰 벌을 받고 말았던 것이다.
그 때는 나도 너무 법을 몰랐고 무식했었다.
단지 행정법원에서 구청과 나 사이의 조정만으로 끝내고 종결을 하고 말았으니까.
그 때의 사건을 정식 재판을 하였었다면 어떤 판결이 나왔을까?
재판을 받아 보아야 좋은 결과도 얻지 못하고 변호사한테 수임료만 탕진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재판을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 지금 후회도 되고 아쉬운 생각도 든다.
사실 그 때로서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 행정법원에서 3차례의 조정을 거치면서 이미
나는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고, 어찌해서 그랬는지, 조정중에 이미 나는 영업정지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 행정법원에서 구청과 조정을 하는 과정에서 변호사 수임료로 백오십만원을 줬는데,
행정법원에서는 80일간의 영업정지와 검찰에서 300만원의 벌금을 내라고 했었고,
나중에 벌금 부분에 대해서만, 정식 재판을 신청하여, 백만원을 삭감 받았었다.
변호사가 뭘 도와줬는지?
행정법원에서 조정을 받을 때 변호사로 부터 무엇을 도움을 받았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벌금부분에 대해서는 나 혼자서 뛰어 다녔고....
그런 고통스런 사건을 다 치루고 난 다음에야 이 카페를 알았으니......
진술 서류를 경찰서 형사가 서랍에 넣어 놓고 1개월 가까이 처리를 하지 않자,
서장실까지 찾아가서 난리를 쳐대서,
그 사건으로 형사 한 명은 지구대로 좌천 받았고, 지구대 경찰 한 명도 다른 곳으로 전출까지
시키도록 했던 인간이다.
그 인간이 드디어 이번에는 상당 기간 감옥에서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니
조금은 안쓰러운 생각도 들고, 인생이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들게 하는 연민의 정까지 생기게 하니....
참 아이러니하다고 해야 할까?
진정으로 자기 자신에게 죄 지은자는 타인에 의해서 그 벌을 받게 되나보다.
내가 응징하지 않았지만, 그 누군가가 그를 벌하다니....
그런데... 오늘 노래하러 온 그 후배 젊은이... 한시간 노래하고 나간 뒷자리 보니....
cass캔맥주 킹사이즈 빈 캔 2개가 테이블 위에 덩그마니 올려져 있다.
제 버릇 개 못준 것인가?
아직도 양아치 노릇 할 소지가 싹 가신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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