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추하고, 허접한 곳에서 산다고 허접한 생각 속에서만 살지 않을 것이다.
고대 광실에서 산다고하여 늘 고귀한 생각 속에서만 살지는 않을 것이다.
길 건너 버스 정류장의 컨테이너 속에서 온갖 잡화를 취급하는 그녀의 생활을 들여다 보게 된 것은
우연히 빗속에서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조금 더 가까운 길을 가늠 하느라, 이쪽 저쪽을 우산 속에서
눈으로 거리를 재고, 거리의 북적임까지 머리속으로 계산을 하면서,
어느쪽 길이 이 빗속에서 나에게 더 안전한 길이 될까를 생각 하는데,
한 쪽은 평지 이지만, 거리가 상인들로 북적이면서 유동 인구가 많은 쪽이고,
다른 한 쪽은 한산한 거리이지만, 높다란 육교가 거리를 가로 지르기 때문에 계단을 타고 올라 가야하여,
한 참을 이리 저리 가늠하고 있는데, '노다지 좋은집'이 눈에 딱 들어왔다.
아주 허름하여 금방이라도 처마가 쓰러져 내릴 듯 한 너저분한 문짝하며,
윈도우 속으로 비치는 빈대떡이 구어져 나오는 철판 마져도 왠지 제대로 된 음식이 되어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옹색하기 그지 없어 보이고, 주위가 지저분해 보이는 것은 나만이 느끼는 버스 정류장의 풍경이 아닐것 같은
노다지 좋은집이 하필 그 시간 우산 속으로 멋스럽게 내 시야에 들어 왔을까?
불쌍한 동정심까지 일어나게 하는 그 빈대떡집의 간판이 눈으로 쏘옥 들어 온 것이었다.
잠시 생각을 가다듬기 위해 몇 발짝 걸어 노다지 좋은집을 빠꿈이 들여다 보는데,
여주인은 늙수구레한 노인과 상을 마주하고 앉아 있는데, 간이 둥근 의자에 엉덩이만 걸치고 앉아 있는
그녀를 발견하고는 적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늘 부황이 든 사람처럼, 다 헤지고 고운물이 다 빠져 버린 듯한 티셔츠를 입고 다녔고, 머리는 부석부석하여,
금방 새들이 집을 짓다 가버린 듯한 그런 형상을 하고 허리춤에는 주머니 두개가 달린 앞치마 비슷한 돈주머니를 차고,
알록 달록한 무늬가 들어가서 때가 낀 것인지 잘 알 수 없는 그러나, 때가 낄대로 낀,
땟국물이 금방이라도 흘러 내릴듯한 헐렁한 몸빼를 걸치고도 당당하던 그녀.
늦은 저녁이면, 몇 몇의 사람들과 무리를 지어 노래를 부르러 오기도 하였는데,
어느날인가는 낮시간에 불쑥 나타나서 어제 저녁에 내 윗도리 하나 여기 떨어 뜨리고 가지 않았느냐고
찾으러 온 적도 있었던 그녀. 아마도 그녀가 찾으러 온 그 윗도리도 쓰레기통에 들어가도 아깝지 않을
그런 옷이었을 것 같은 상상을 하게 만들었던 그녀가 거기 노다지 좋은집에서 그 늙수그레한 노인과 함께
안주를 집어 먹으며 앉아 있는 것을 본 것이다.
노다지 좋은집의 웃음 좋은 그녀가 나를 보고 반갑게 눈 웃음을 치면서 반기자 간이 의자에 앉아 있던 그녀가
고개를 돌리며, 나를 쳐다보고 목 인사를 하여 나도 엉겁결에 목 인사를 하고, 돌아 서는데,
크지도 않은 겨우 햇살이나 가릴만한 내가 쓰고 있는 우산이 어딘가에 턱 걸치기에 고개를 틀어 다시 고정을 하면서
발 아래를 보니, 빗물 속에서 발그레 웃고 있는 꼭 밤 톨 같은 고구마 세 무더기가 바닥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군침이 넘어 갈 거는 뭐람.... 다시 고개를 돌려 보니 컨테이너 가판대에 먹음직스런 무화과가 담긴 작은 소쿠리며,
투명 비닐 봉지에 2개씩 나뉘어 담긴 따끈 따끈한 옥수수가 옹색한 선반에 올려져 있고,
그 옆으로 초코�이며, 사탕이며, 껌들이 이것 저것 진열된 것들이 보이는데,
그래도 내 발길은 발그레 웃고 있는 그 밤 톨 같은 고구마에서 한 발짝도 옮겨지지 못하고,
주위를 두리번 거리면서 가게 주인을 찾고 있었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댜.
그때 번개 같이 2층의 성인용품 사장의 말이 떠올랐다.
"이 누님은 우리 가게 아래서 옥수수 장사 하는 누님인데, 다른 곳으로 갈려고 하는 것을
여기 노래방이 좋다고 이리 모시고 왔심니더.'
그랬다. 그 수세미 같은 머리를 이고, 뜨거운 햇살에 빛이 다 바래 버린 티셔츠를 입고, 땟국물이 줄줄 흐를 것 같은
몸빼를 입고와서 즐겁게 노래 부르고 놀았던, 지금 노다지 좋은집의 늙수구레한 노인네와 겸상을 하고 앉아,
안주를 집어 먹던 그 아주머니가 바로 이 고구마의 주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미치자,
노다지 좋은집으로 발길을 돌려 그녀와 눈을 맞추며, 고구마 주인이죠? 그러자 그녀는,
의자를 자빠 뜨리며, 뒤가 터진 프라스틱 슬리퍼 한 짝이 벗겨지는 것도 모르고, 튀어 나오다가, 다시 뒤 돌아서서,
슬리퍼를 발에 끼우면서, '응. 사장님이 지난번에 여기 왔을 때 나는 봤는데, 나를 못 보고 그냥 지나치길래 왜 그냥가지? 했어요.'
'언제요?' '지난번에 빈대떡 사 가실때요.'
그랬다. 빈대떡 집에서 녹두 빈대떡을 주문하여 가져간 적이 있는데, 그때 그녀가 나를 보았었나 보다.
'아는척 안해서 서운 하셨어요?' '아니야, 못 볼 수도 있지.'
너그러운 그녀의 이해심에 안심하면서, 그 밤 톨 같은 고구마를 보면서, '맛이 들었을까요?'
'응, 저래뵈도 맛이 아주 좋아. 한 번 잡숴 봐!'
밤 톨 같은 고구마 한 무더기와 삶은 옥수수 한 봉지를 넣어 달래서, 유동 인구가 많은 평지를 택해서,
복잡한 길을 빠져나와 내 영업장으로 오면서 그녀를 다시 한 번 떠 올려 보았다.
그동안 내가 생각해 왔던 그녀는 아니었다.
겉으로 보이던 행색과는 너무나 다른 그녀의 명랑하고 예의 바른 말씨.
하루 종일 땡 볕에 그을리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그녀.
지금 내가 가지고 가는 보잘 것 없는 밤 톨 같은 고구마 같이 보였던 그녀가,
보기와는 달리 맛이 제대로 들었다는 그녀의 말과 같이, 어딘지 모르게 그녀에게서 구수한 냄새가
날 것 같은 그녀. 삶이 무엇인지를 문득 깨닫게 해준 그녀를 생각 하면서,
열심히 사는 겉치레가 없는 진솔한 그녀의 모습이 웬지 속이 꽉 차 있을 것만 같았다,
( 후배들이 다 먹고 요것 남아서....)
허레와 허식으로 치장하여, 누가 내 속을 들여다 볼세라 늘 위장술로 가득찬 내 삶과 비교 되던 그녀.
오로지 진실만을 말하고, 작은 것도 아끼면서 살아 갈 것만 같은 그녀.
많이 가지고, 아름답고 황홀하게 차린 사람보다 마음 편하게 해 주는 그녀가 부럽게 느껴졌다.
더 이상의 추락이 없을 것 같은 삶.
뭔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내게는 없는 것일까?
몇 년 전에 사놓고 한 번도 입어 보지 않은 브라우스가 그녀에게 맞을까?
크기가 맞지 않아 입지 않고 넣어둔 그 브라우스를 그녀에게 주어도 될까?
가을이 오면 그녀에게 선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