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잊어 버렸던 이름

오늘어제내일 2008. 5. 20. 01:08

꼭 알아야 할 행정 처리 문제가 발생했는데,

핸드폰의 저장 공간을 뒤져도,  인터넷에 저장된 주소록을 뒤져도, 한 참을 잊어 버리고 멀리해버린

사람들의 연락처가 보이질 않았다.

여기저기 들 쑤시고 찾아도 찾을 길이 없었다.

하는 수 없지.

그저 손 쉬운 홈페이지 열어서 그 때 오래전에 근무했던 부서 찾아서 단번에 버튼을 눌렀다.

 

H씨 계신가요?

다른 곳으로 발령 나신지 오래 되었습니다.

어디로요? 연락처 알 수 있을까요?

실례지만 성함이?

네. Y라고 합니다.

 

머뭇 머뭇 거리는 상대방의 응대가 좀 수상. 나를 아는듯...

 

혹시 저를 아세요?

네.....

실례지만 누구세요?

저..... K입니다.

네?  그러니까..... 내가 아는..... 그 K라구요?

네......음성이 비슷해서 성함 여쭸어요.

그러세요...... 난 퇴직 한 줄 알았는데..... 가끔씩 잡지에 동명이 있어서.....

동명인은 저 아랫녘 사람이고,,,,,

네....

잘 지내신다고 가끔씩 소식 듣고 있어요.

잘 지내긴요.

잘하고 사실 거예요.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으시니.

무슨... 뭐가 잘 사는 건지 능력이 뭔지 몰라도 그냥 살지. 

 

더이상 무슨 할 말이 있을까?  30년 쯤 지났으니 대화가 궁핍하다.

 

저 H씨 연락처 좀.......

네 ......

 

그리고  통화는 끊겼다.

 

뜻밖의 우연이란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구나.  드라마에서만 우연이 일어나는 줄 알았는데.....

 

같은 직장에서 부서는 달랐지만, 어찌어찌하여  많이 친하게 지낼 수 있었던 K,

아마 업무의 연계 때문이였던 듯하다.

K가 졸졸 따라 다니게 되면서 동료들은 그러다 정이라도 들면 어떡 할거냐고 은근히 걱정까지 하면,

한 참 아래인 애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다고 핀잔을  주기는  했어도,

그렇게 싫지 않은 핀잔이었다.

동생 대하 듯, 누나 대하 듯 그렇게 지내면서 업무를 떠나 개인적으로 정이 들 무렵 이었던 듯하다.

K는 여자 친구를 소개했다.

그런데, 내 눈에 그 여자 친구가 왜 그렇게 밉게 보였는지 모르겠다.

그래 겨우 그렇게 생긴 애를 사귀는거야?  하는 맘으로 그날부터 K를 멀리 했고,

K는 다른 곳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때 K는 나 한테 상처를 많이 받았던 듯하다.

데리고 나타난 여자 친구를 내가 좀 더 따뜻하게 대해 줬더라면, 

오늘 통화를 했을 때 그렇게 서먹 거리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 때 정말 K가 직장 동료 이외의 감정으로 오고 있었던 것일까?

갑자기 달라진 나의 태도며, 그 후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어쩌다라도 부딪혀지지 않았던 K.

 

내 목소리를 듣고 혹시나 하여 이름을 물어 봤다면서,

그의 동료들을 통해서 가끔씩 소식 듣고 있다면서,

그 동료의 부인이 나의 후배여서 아마도 귓등으로 소식을 듣고 있기는 했었나 보다.

 

그래 어떻든 건강하고 잘 살면 되는 것이지....

그냥 까맣게 잊어 졌던 지난날도 가끔씩은 생생하게 어제의 일처럼 닥아 오는 나이가 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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