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날이면,
할 일이 없어
장독대 가장자리에 곱게 피어 있던
봉숭아 잎과 꽃을 따다가
소금과, 숯을
꽃과 잎에 넣고
짓이겨
누런 비료 포장지 뜯어
손틉 위에 얹혀 있던
짓이긴
꽃물을 감싸고,
나른한 낮잠
한 숨 자고 나면,
주황색 물이 손틉과 손가락 끝에
누릿누릿
들어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그렇게 몇 번 물을 들이고 나면
손 틉들은 빨갛게
봉숭아 꽃처럼 손틉에서
꽃을 피웠다.
그 꽃잎이 첫 눈 내릴때까지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 진다고 했다.
주룩 주룩
내리는 빗물을
원추리가
숨도 쉬지 않고
마셔대고 있다.
이 맘 때 면
고향의
바닷가
바위 절벽 위에
널부러져 피어 있던 원추리
썰물이 되면,
고동도 줍고, 소라도 줍고,
굴도 따고,
대나무 바구니에 원추리도
얹혀
집으로 따라왔다.
노란 꽃 원추리가
파도와,
갯바람과
쏟아지는 태양과
가끔씩 뿌려주는 여름비를 친구 삼아
바위 절벽에
노랗게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