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
보통 사람들은 깊은 초 잠에 빠져들 시간 02:00 경이면 갈등으로 이어지는 시간.
그 시간 업장에 손님이 없을 땐, 아르바이트가 지켜 줄 때는 나도 집으로 들어 가서 단 잠에 빠져들
생각에 행복한 시간이 되는 때도 있으나, 요즘 처럼 손님이 뜸해서 아르바이트를 잠시 쉬게 하는 때는
그만 간판을 내릴 것인가? 조금만 더 기다려 볼 것인가? 갈등이 일어 나는 시간이다.
초저녁에 손님이 많았으면, 건강 챙긴다는 핑계로 미련없이 간판을 내리고 홀가분히 들어 갈 수 있으나,
지지부진하여, 자꾸만 매출 장부 들여다 보는 날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 보면, 어느사이 3시를 넘기기도 하는 날이 많아 지는데, 이상하게도 간판 불을 늦게 내리면 늦게 내릴 수록 늦은 손님이 있어서 늘
갈등을 겪게 된다. 간판 내린 다음에 손님 찾아 왔다 실망하고 돌아 서면 미안해서 어쩌지? 과연 손님을
생각해서 하는 걱정인지? 장부의 숫자가 적게 느껴져서 그러는지 분별하기 어려운 때도 종종 있다.
어젯밤에도 시간의 무료함을 라듸오를 틀어 놓고 귀로 달래고 있는데, 가끔씩 혼자 찾아 오는
노년에 접어든 손님이 "노래 30분만 하자!"하면서 예의 그 웃을 듯 말 듯 비웃는 듯 아닌 듯 한 이상한 얼굴 표정으로 말을 트더니, 다른 날과 다르게 만원을 꺼내면서, "이 것 좀 봐라! 내 지갑에 만 원 밖에 없지 않느냐? 그러니 만원 밖에 줄 수가 없다." 하는 것이다.
문전 박대를 수없이 하여 그만 찾아 올 법도 한데 아직도 가끔씩 찾아 오고, 어쩔때는 한 시간 신청하였다가 노래 한 두곡 부른 다음에 환불을 요구하기도 하고, 아무리 심한 말로 창피를 주어도 도무지 상처를 받지 않으며, 오히려 "너? 나 좋아하니?" 하면서 혀를 낼름 내밀고 훌쩍 나가 버리곤 하여, 미워하기도 그렇고, 잘 상대해 주기도 힘들어 이미 손님이라 생각을 하지 않고 열외로 치부해 버렸는데, 지난 달 어느날 조심스럽게 들어 오면서, "오랬만에 왔지?"하더니 아무 말없이 계산을하고, "조금 있으면, 어떤 여성분이 올 것이다."하면서, 다른때 처럼 노래를 찾아 달라거나하여 귀찮게 하지도 않고, 조용히 혼자서 노래를 부르는데, 노래 실력이 꽤 수준급으로 동요에서부터 가곡, 가요, 팝송까지 섭렵하고 있는데, 같은 건물에서 호프집을 하고 있는 젊은 여사장이 "혼 자 온 남자 어디로 갔어요?" "아니? 사장님이 저 아저씨 파트너로 왔어요?" 하면서, 호프집 사장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왔으면 들어와서 노래를 찾아 주든가 해야지 거기 있으면 어떡하니?" 하여 호프집 사장님이 "노래 몇 곡 찾아 주고 나올께요." 하고 들어 갔었다.
호프집 여사장의 말:
호프집네 아들과 손님의 막내 아들이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고 있고, 손님은 상당한 실력이 있는 유식한사람으로 모 대학원에 강의도 나가고, 술에 취했을 때와 취하지 않았을 때가 완전히 달라서 그 손님의 진가는 술에 취하지 않았을 때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러한 손님이 어제 또 온 것인데, 어제는 만취 상태는 아니어서, 자신의 체면과 품위를 지키는데, 소홀하지도 않았고, 노래 한 곡만 찾아 달라고하여, 찾아 줬더니 그 다음부터는 주구장창 동요와 가곡만 부르고 나와 담배를 피우면서,
"너 오늘은 왜? 나한테 쌀쌀맞게 하지 않니?" 하면서 예의 그 반말을 계속 하는 것이 조금 거슬려서,
" 오늘은 만취하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손님은 왜? 나한테 번번이 반 말을 해요?" 했더니,
"동생아, 네가 나이를 먹었으면 얼마나 먹었니? 민증을 까 볼까? 내가 지금 예순 여덟인데, 한국 나이로는 예순 아홉이고. 너 한테 반 말 좀 하면 안 되겠니?"
"호프집 사장님 말로는 막내 아들이 군대에 갔다던데, 어찌 나이가 그렇게 많아요?"
"그러게 내 그것이 조금 부끄럽다. 어느날인가 내가 죽을 힘을 다해서, 열심히 힘을 썼더니 아 글쎄 그 후에 그놈이 태어나서, 그게 늦동이가 되어 이제 군대에 갔다. 알겠니?"
"그렇게 어린 아들이 있는분이 왜? 맨날 그렇게 횡설수설하고 개차반 같은 생활을 하세요?"
" 너도 술 한 번 마셔봐라 그러면 나처럼 개차반이 될 것이다."
"愛之深" 책을 시간 나는대로 읽고 있어서 책상 위에 올려 놓고 있는데, 손님이 책을 들여다 보더니
"이 책 어디서 났니? 일인자는아니고, 이인자 쯤 되지, 일인자는 대조영 드라마 제목 쓴 사람이고..."
출판 기념회에 다녀온 후 책을 읽으면서도 작가가 붓글씨의 대가인 것도 모르고, 그저 글씨를 잘쓰는 분으로만 알고, 부인이 꽃꽂이 협회의 창립 이사장이어서 인사차 다녀온 출판기념회였으며, 두툼한 책에서 오는 부담도 떨쳐 버릴 수 없는 솔직한 심정인데, 이왕 곁에 있는 책이니 시간 나는대로 읽고 있는 차에 손님으로 부터 저자가 붓글씨의 대가라는 소리를 듣고 적이 놀라웠고 무지한 내 자신이 부끄러워 몸 둘바를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찌 보면 오십대 후 반으로도 보였고, 어찌 보면 오십대 초 반으로도 보이는 동안의 베일에 싸인 주태백이며, 추운 거울날 앞 집의 크럽에서 구타를 당하고 피를 질질 흘리면서도 한 손에 들려 있는 두툼한 책을 꼭 붙잡고 있는 모습도 보았고 , 아무리 만취하여도 절대 책을 놓고 다니지 않는 것이 범상해 보이지는 않았는데,
손님한테 건성으로 대하고, 거드름 피우다 된통 한대 얻어 맞아 인간으로서 도리를 다하지 않은 무식함이 온 몸에서 묻어 나는 느낌이 떠나지 않는 날이었다.
그 손님 아마도 또 며칠 내에 올 것이다. 역학으로 앞으로의 내 삶을 풀어 주겠다고, 일필휘지의 명필로 적어 갔으니, 혹 그 분이 명필의 대가는 아닐까?....